의리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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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를 의미하는 유교교리.
내용 요약

의리사상은 인간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를 의미하는 유교 교리이다. 맹자는 공자 사상의 중심 개념인 인(仁)과 짝으로 병칭할 만큼 의를 중요시하였다. 맹자는 공자의 인이 갖는 두 측면을 분석해 존재론적 측면을 인, 실천론적 측면을 의로 구분하였다. 인이 인간의 내면적 바탕이라면 의는 인간의 외형적 행위 규범이며, 인과 의는 도덕적 인격성의 표리로서 서로 보완적이며 조화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송대의 이학자(理學者)들이 의를 실천해야 하는 근본 이유와 근거를 밝혀서 의에 이(理)를 덧붙여 의리로 일컫게 되었다.

목차
정의
인간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를 의미하는 유교교리.
내용

이(理)를 중요시한 송대의 이학자(理學者)들이 공자의 사상을 계승한 맹자의 의(義)를 이와 병칭함으로써 체계화되었다.

의리라는 용어 자체는 『예기』 예기편(禮器篇)의 “선왕이 예를 제정함에 있어서 근본이 있고 문식(文飾)이 있게 하였으니 충신(忠信)은 예의 근본이고 의리는 예의 문식이다.”와, 『북사(北史)』 최호전(崔浩傳)의 “의리를 정밀하게 연구한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송대 이전에도 이미 쓰였다.

이 문장들에서 의리란 상황에 맞는 행위 또는 글이나 말의 뜻을 의미한다. 의리의 ‘의’는 매우 다양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 ‘의’자는, ① 마땅한 것(宜), ② 올바른 것(善), ③ 인간의 행동이나 태도의 구체적 모습(儀), ④ 남과 육친(肉親)과 같은 관계를 맺음(義兄弟), ⑤ 군자의 뜻(意味) 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여기서 윤리적 문제와 직접적 관계가 있는 것은 ① · ② · ③이라 할 수 있다. 즉, 의 개념은 ‘올바름’이라는 도덕성을 기반으로 ‘마땅함’이라는 상황적 가치 판단을 통해 실천하는 인간의 당위적 규범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의는 인식 원리의 측면보다 실천 행위의 속성이 강하다.

『주역』 곤괘(坤卦)의 문언전(文言傳)에도 “의로써 바깥을 반듯하게 한다(義以方外).”라고, 외형적 의미로서의 의 개념을 밝히고 있다. 또한, 도덕적 정당성으로서의 올바름을 추구하는 의 개념의 적극적 실천 의지[義勇]에는 옳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 정신과 저항 의식[義憤]이 담겨 있다. 그것은 비판이나 저항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도(正道)를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올바르지 않은 것에 대한 저항 의식은 반드시 객관적 대상을 향해 내닫는 것만은 아니다. 올바름을 추구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내성적 비판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 개혁을 하면서 사회의 부정에 대항하는 저항 의식이다. 더 나아가 의는 외세의 부당한 침략이나 역사적 위기에 강하게 대응하는 국난 극복의 정신을 담고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 마땅함을 추구하는 의의 실천은 개인의 주관이나 입장, 주어진 상황의 시간이나 공간, 구체적 대상 등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가변성이 있는 데에 커다란 문제가 있다. 즉, 윤리적 당위성이 선(善)의 세계로 집약된다는 추상적 내용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려운 것이다. 여기서 옳고 그른 것의 판단 기준이 무엇이며 어떤 근거에 의한 것인가 하는 본질적 문제가 제기된다.

공자는 『춘추』를 통해 당시 춘추시대의 불의한 천자를 비판하고, 무도한 제후를 배척하고, 대부의 비행을 토죄하여 선악 판단의 대의명분을 밝혔다. 『춘추』에 담긴 의의 이념은 개인 윤리적 차원을 넘어 정치 · 사회적 윤리 문제로 확대된 것이다. 그리고 역사에 대한 공명정대한 비판은 해박한 역사 지식, 객관적인 이성 판단, 고도의 도덕적 인격이 요구되기 때문에 공자의 대의정신이 담긴 춘추사상은 후대 의리사상의 표준이 되었다.

그러나 『춘추』에 나타난 구체적 비판 방법은 당시의 사실을 기록한 문장 속에 내용을 첨가하거나 생략하는 필삭(筆削)의 방법을 통해 주1주2의 뜻을 담았으며, 사건마다 의와 불의를 밝힌 기록은 아니다.

의와 관련한 가치 판단의 기준과 원리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은 맹자였다. 맹자는 공자 사상의 중심 개념인 인(仁)과 짝으로 병칭할 만큼 의를 중요시하였다.

인은 인간의 본질을 의미하는 존재론적 개념과 그 본질에 입각한 행위를 의미하는 실천론적 개념을 동시에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맹자는 공자의 인이 갖는 두 측면을 분석해 존재론적 측면을 인, 실천론적 측면을 의로 구분하였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다.”(孟子 告子 上)라거나 “인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고, 의는 사람의 바른 길이다.”(孟子 離婁 上)라는 맹자의 말에서 보면, 인은 사람의 마음 중에서도 편안한 집과 같은 마음이므로, 남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도심(道心)을 말한다. 그리고 사람이 걸어야 하는 바른 길에 비유된 의는 사람의 올바른 실천 원리를 뜻하는데, 이 올바른 실천 원리는 도심, 즉 인에서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인이 인간의 내면적 바탕이라면 의는 인간의 외형적 행위 규범이며, 인과 의는 도덕적 인격성의 표리로서 서로 보완적이며 조화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인은 의를 제공하는 원리로서 인도(人道) 자체라고 할 수 있으며, 의는 인이 구체화될 때 도덕적 행위 규범이 된다.

의에 의해 조절되지 못하면 인이 참된 인이 될 수 없음과 같이, 인에 근거하지 않으면 의 역시 올바른 의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인과 의가 합쳐질 때 비로소 진정한 인격의 완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인에 거처하고 의에 말미암으면 대인(大人)의 할 일은 다 갖춘 것이다.”(孟子 盡心 上)라는 맹자의 말은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비록 인과 대비될 때 의가 행동 규범이라는 특성을 갖게 되지만, 의 자체로 볼 때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은 인간의 고유한 ‘본연지성(本然之性)’에 내재한다고 맹자는 ‘사단설(四端說)’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맹자의 의내설(義內說)은 가치 판단의 기준이 인간 외부에 있다는 고자(告子)의 의외설(義外說)과 구분된다.

즉, 선천적인 본래의 마음으로 제기된 사단설 가운데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인의 단(端)이고,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의의 단으로서, 인이 사랑이라는 포용적 성격이라면 의는 비판이라는 분별적 성격으로서 그 특성이 다를 뿐 모두 인간 고유의 마음인 것이다.

맹자는 이러한 의의 마음이 궁극적으로 천리(天理)에 근거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맹자는 “사람의 마음이 한 가지로 그런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理)와 의다.”(孟子 告子 上)라고 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이는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만물과 모든 현상의 변화 속에 있는 존재 원리로서 곧 천리를 뜻한다. 그리하여 이와 의는 비록 그 속성은 다르나 천리라는 공통 기반으로 매개되며,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고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의는 인간 모두가 가지는 보편적 당위 규범이 된다.

맹자의 의 개념을 종합해 보면, 의리란 천리에 기반을 두고 인간의 보편성으로서 내재된 규범 원리(義)에 의해 인간의 마땅한 도리를 인식하고, 구체적 현실에서 그 도리를 마땅함(宜)으로 실현하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 현실에서 마땅함을 실천하려는 ‘상황적 의’의 개념에 도덕적 보편성으로서의 ‘원리적 의’를 밝힌 맹자의 의가 사회화되는 과정은 인간 관계의 가장 원초적 관계인 가족 관계에서 출발한다.

맹자는 “부모와 하나가 되는 것은 인이고 형을 따르는 것은 의다.”(孟子 盡心 上)라면서 원초적 인간 관계인 형제간의 상하 관계에서의 질서 의식을 의라고 하였다. 현실의 인간 사회에서 맺어지는 원초적인 인간 관계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이고 형제의 관계는 이 부자 관계를 연역함으로써 성립된다. 즉, 부자간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형과 아우의 관계도 원만하게 유지해야 하는 당위성이 생긴다.

또한, 인간 사회의 본래적인 모습을 원활하게 유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이차적 관계로서 대표적인 것이 군신(君臣)간의 정치적 관계이며, 여기에도 의의 당위성이 요구된다. 올바름을 바탕으로 마땅함의 도리를 다해 사회 질서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신하의 의라면, 원래의 역할을 못하는 자격 없는 임금을 교체하는 것도 맹자가 주장한 의다.

또한, 벗과의 관계에서도 약속을 꼭 지키는 믿음[信]에는 올바름이라는 도덕성과 마땅함이라는 상황성이 갖추어질 때 진정한 의미가 주어진다. 인간은 정신과 육체를 함께 갖추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리적 차원에서는 물질적 가치가 요구되고, 도덕적 차원에서는 정신적 가치가 요구된다.

그런데 현실 상황에서 가치 체험이 동시에 일어날 때 갈등이 야기되고, 가치의 순위와 체계로서의 가치 판단의 문제가 제기된다. 즉, 의리 실천의 선결 문제로서 의와 이(利)에 대한 가치 판단과 선택의 문제다.

공자는 물질 중심의 삶보다는 도덕 중심의 삶을 강조해 의와 이의 가치 선택에 따라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였다. 전국시대에 들어와 더욱 도덕적인 인도를 외면하고 이기적 부국강병으로만 내닫는 사회 풍조가 되자, 맹자는 이에 대한 적극적 비판 의식에서 이보다 의를 중요시하는 중의경리사상(重義輕利思想)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의리를 중시하는 가치관에는 물질적 가치가 적당하게 충족되어야 하며, 물질을 강조하는 가치관에는 도덕적 가치가 충분히 보충되어야 한다. 바로 의와 이의 조화를 이루는 데에 의리 실현의 참된 목적이 있는 것이다.

공자와 마찬가지로 맹자의 사상도 당시의 사회 정책에 반영되지 못하고 사회는 여전히 혼란을 거듭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맹자 이후에 나타난 순자(荀子)는 보다 강력한 강제력을 가질 수 있는 예(禮)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상황적 의의 구체적 제도화에 힘쓴 이 예사상도 구체적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법가사상의 발전과 함께 유가의 의사상은 상대적으로 크게 약화되었다.

그런데 송대에 이르러 맹자의 사상이 다시 부각되고, 의를 실천해야 하는 근본 이유와 근거까지 밝혀 의에 이(理)를 덧붙여 의리로 일컫게 되었다. 즉, 현실의 구체적 상황 속에서 인간이 살아야 할 올바른 길이 무엇이고, 어떤 삶이 가치 있는 것인가 등의 윤리적 영역이 가치 판단의 기준과 근거 등을 밝히는 철학적 영역으로 심화된 것이 주3이다. 그리하여 송학을 의리를 밝히는 학문이라는 의미에서 의리학으로 부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의리사상이 발달하였는데, 유교 문화가 생활 속에 정착되는 삼국시대부터는 충절과 신의를 강조하는 선비정신이 더욱 고조되었다. 선비는 유교적 이념을 담당하는 인격으로서 인의를 바탕으로 한 도덕적 양심에 따라 의리를 실천하는 사람이다.

공자는 “뜻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살기 위해 인을 해치지 않고 살신(殺身)하여 인을 이룬다.”라며, 선비가 지향하는 참된 가치는 지위와 생존을 넘어선 인격성에 있다고 하였다. 맹자도 선비는 일정한 생활 근거[恒産]가 없어도 한결같은 마음[恒心]을 유지하는 사람으로서 생명을 버리더라도 의를 선택하는 강한 신념이 있다고 하였다.

5세기 초 신라눌지왕박제상(朴堤上)고구려일본에 볼모로 가 있는 왕의 아우들을 데려 오는 일을 맡았을 때, “일이 쉬운 지 어려운 지를 헤아려서 행동하면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요, 죽게 될 지 살 수 있을 지를 꾀한 다음에 행동하면 이는 용감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일본에 건너갔다가 붙들려 모진 고문에 항거하면서 끝내 일본의 신하가 되지 않고 죽음으로써 충절과 의용(義勇)을 실천하였다.

7세기 진평왕찬덕(讚德)백제와의 전쟁에서 “적이 강한 것을 보고 성(城)의 위급함을 구하지 않는 것은 의가 없는 것이다. 의가 없이 사는 것은 의를 지켜 죽는 것만 못하다.”고 하면서 최후까지 분투하다가 죽었다.

신라 진덕왕강수(强首)는 부모가 비천한 여자 대신 신분이 높은 여자와 혼인할 것을 요구하자, “가난하고 비천한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요, 도를 배우고 실천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이상 三國史記 列傳) 하고, 전날에 사귀었던 대장장이의 딸과 혼인하였다. 이는 이해를 헤아리지 않고 신의를 실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의리가 인격을 통해 구현되는 양상으로서, 의용이 현실적 위난이라는 외적인 상황을 향한 투지라면, 절의와 신의는 현실의 위압이나 유혹을 거부하고 자신의 신념을 지켜 나가는 내면의 투쟁이요, 굽힐 줄 모르는 지기(志氣)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의리사상의 전개 과정에서 선비정신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조선시대이다. 조선 왕조가 출범하는 역사적 전환기에서 유학자들이 상황적 의를 근거로 혁명의 정당성을 제기한 정도전(鄭道傳) · 권근(權近) 등의 입장과 원리적 의의 강상론(綱常論)을 근거로 혁명에 반대한 정몽주(鄭夢周) · 길재(吉再) 등의 입장으로 양분되었을 때, 어느 것이 정당한가 하는 것은 의리의 중대한 문제였다.

여기서 세종시대 이래로 강상에 의리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길재 뒤에 김숙자(金叔滋) · 김종직(金宗直) · 김굉필(金宏弼) · 조광조(趙光祖)로 이어지는 사림파를 존숭함으로써 조선 시대 의리사상을 특징짓는 요소로 되었다.

혁명의 주도 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비판 기능을 잃고 권력의 옹호 세력으로 된 반면에, 강상론자는 권력과 분리되어 유교 이념의 실현을 주장하는 비판 세력으로 남았다는 점에서 의리의 정당성을 유지하였다고 볼 수 있다.

사림파는 의리를 이념적 중심으로 지키면서 권력 집단에 비판적이었고 순수한 이상주의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훈구 세력과 갈등을 일으키면서 권력의 무수한 탄압을 받았으며, 이 희생을 대가로 의리 정신이 더욱 심화되어 갔다.

그러나 그 뒤에 사림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의리에 비추어 권력 집단을 비판하는 입장과 권력을 통해 유교 이념을 실현하려는 입장이 분열을 일으키면서 주4을 야기하였다. 그리고 당쟁을 통한 이러한 의리 논쟁은 명분론으로 치우쳐 실학파의 성장과 함께 의리론의 허구적인 비현실성이 지적되고 선비의 기능과 구실에 대해 심각한 반성이 일어났다.

그러나 외세의 침략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에는 창의(倡義)와 순절(殉節)의 의리 정신이 민족 정신의 원동력으로 발휘되었다. 특히,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700의사(義士)와 함께 장렬하게 전사한 조헌(趙憲)금산전투에서 의병들에게 다음과 같이 마지막 훈시를 하였다.

“오늘은 다만 한 번 죽음이 있을 뿐이다. 죽고 살며 나아가고 물러섬을 의라는 한 글자에 부끄럽지 않게 하라.”

이처럼 의는 국가가 존망의 위난에 처했을 때 생명을 버리면서 투쟁하는 용기의 원천이요, 정당성의 근거가 되고 있다. 한편, 의리에는 개인간의 신의도 있고, 사회의 도덕 질서로서의 도의도 있고, 국가에 대한 충의도 있고, 국제간의 신의도 있고,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진리로서의 도의 실현에 생명까지 버리는 구도정신(救道精神)이 있다. 적용 범위에 따라 소의(小義)와 대의(大義)로 구분되나 소의보다 대의를 우선시하는 정신이 의리사상의 참된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조선 말기 서양의 세력이 동점(東漸)해 오자 이에 대항해 강한 의리 정신이 다시 발휘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항로(李恒老)주5이다. 송시열(宋時烈)의 의리사상을 이은 이항로는 당시의 상황에서 의리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과제로서 화이(華夷)의 분별을 제기하였다.

그가 말한 화(華)란 중화 문물의 중심지를 한국으로 인식한 것이고, 이(夷)는 조선에 압력을 가해 오는 서양 세력을 말한다. 서양에 대한 배척과 저항 의식은 도덕성과 민족 문화를 보존하려는 의지며, 동시에 서양인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간파해 침략 세력에 항거하는 의리사상의 도학적 발현이기도 하다.

이항로의 이러한 의리 정신은 제자인 김평묵(金平默) · 유중교(柳重敎) · 최익현(崔益鉉) · 유인석(柳麟錫) 등에 이어져 일제의 침략 시기에 척화론(斥和論)과 의병 운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춘추대의를 실천하게 되었다.

의리사상은 인간의 내면적 보편성에 근거하여 현실에서 마땅함을 실천하는 사상이다. 의리의 실천을 위해서는 먼저 확고한 자기 인식이 전제된다. 자기 주체에 대한 참된 인식은 자아에만 머무르지 않고 만인과 소통될 수 있는 보편적인 세계가 있기 때문에 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경지가 있다. 또한, 자주적 주체 의식은 불의에 항거할 수 있는 원동력이며 국난을 극복할 수 있는 민족의 정기(正氣)다.

그러나 의리가 주관적인 인격적 규범으로서만 이해되었을 때 자칫 관념화, 보수화되기 쉽다. 그리고 보편적 원리를 외면한 채 상황에 맞는 의리로만 이해될 때 강상을 떠나 독단적인 합리화로 변질되기 쉽다.

의리사상의 궁극적인 이상은 원리적 의와 상황적 의의 조화에 있다. 그러므로 보편적인 인격적 규범 원리를 바탕으로 올바른 현실 인식과 역사 의식을 갖추고, 끊임없는 자기 개혁과 의리 규범의 새로운 의미 발견, 그리고 규범 형식의 합리적 재창조를 위해 노력할 때 의리사상의 활기 있는 기능을 기대할 수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춘추(春秋)』
「전통사상과 주체의식」(권오돈, 『사문논총』 1, 사문학회, 1973)
「송우암(宋尤庵)의 의리사상에 관한 연구」(류남상, 『충남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논문집』, 1983)
「유학에 있어서 의리사상의 본질과 기능」(오석원, 『안동대학 논문집』 7, 1985)
「의리사상과 선비정신」(금장태, 『유교사상과 한국사회』,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1987)
주석
주1

옳음과 그름.    우리말샘

주2

옳고 그름이나 선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함.    우리말샘

주3

중국 송나라 때에 체계화된 유교 철학. 한(漢)나라, 당나라 때의 훈고학이 고증에 치중한 데에 반하여 독자적 입장에서 경전을 해석하고 도교, 불교 사상까지 포용한 우주관, 역사관, 인간관을 형성하였으며, 철학적 사색을 통하여 인성과 우주의 관계를 밝히려 하였다.    우리말샘

주4

당파를 이루어 서로 싸우던 일.    우리말샘

주5

정의를 지키고 사악함을 물리친다는 뜻으로, 가톨릭과 서양의 문물을 반대한 19세기 중엽 구한말의 사상 조류.    우리말샘

집필자
오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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