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순 ()

초의대선사 영정
초의대선사 영정
불교
인물
조선 후기, 해남 대둔사(대흥사)의 13대 종사로 선과 교에 밝았고 시와 서예, 그림과 다도에도 뛰어났던 승려.
이칭
초의(草衣), 대각등계 보제존자(大覺登階普濟尊者)
필명
일지암(一枝庵)
중부(中孚)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86년(정조 10)
사망 연도
1866년(고종 3)
본관
인동(仁同)
출생지
전라남도 무안군
주요 저서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 초의시고(草衣詩稿), 일지암문집(一枝庵文集), 동다송(東茶頌)
관련 사건
선 논쟁
내용 요약

의순(意恂, 1786~1866)은 조선 후기 해남 대둔사(大芚寺, 대흥사)의 13대 종사로 선과 교에 밝았고 시와 서예, 그림과 다도에도 뛰어났던 승려이다. 편양파의 법맥을 이었고 대둔사에서 오래 주석하였으며 저술로는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 『초의시고(草衣詩稿)』, 『일지암문집(一枝庵文集)』, 『동다송(東茶頌)』 등이 있다. 추사 김정희(金正喜)와 막역한 사이였고 백파 긍선(白坡亘璇)과 선 논쟁을 펼쳤으며 정약용(丁若鏞)의 지도를 받은 『대둔사지(大芚寺志)』 편찬에도 참여했다.

정의
조선 후기, 해남 대둔사(대흥사)의 13대 종사로 선과 교에 밝았고 시와 서예, 그림과 다도에도 뛰어났던 승려.
가계 및 인적사항

의순(意恂)은 1786년(정조 10) 4월 5일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면(三鄕面)의 인동(仁同) 장씨(張氏) 집안에서 태어났다. 호는 초의(草衣), 주2는 일지암(一枝庵), 주3은 의순(意恂)이며 는 중부(中孚)이다.

주요 활동

의순은 16세 때 전라도 남평(현 전라남도 나주시) 운흥사(雲興寺)에서 벽봉 민성(碧峰敏性)에게 출가하였고, 대둔사(대흥사)의 제12대 종사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주1완호 윤우(玩虎倫佑, 1758∼1826)에게 구족계를 받고 법을 이었다.

그는 과 교에 정통하고 유학에도 일가견이 있었는데, 24세에 강진에 유배와 있던 정약용으로부터 시(詩)와 역(易) 등을 배웠다. 30세에는 금강산에 다녀오다가 한강 유역에서 김정희 형제, 정약용의 아들 정학연(丁學淵)과 정학유(丁學遊), 신위(申緯), 홍현주(洪顯周) 등 당대의 주4들과 시문을 주고받았고, 평생 이들과 교류하였다. 38세 때는 정약용의 지도를 받아 스승 완호 윤우, 소요파의 아암 혜장(兒庵惠藏)이 주관하여 펴낸 『대둔사지』의 편집 작업을 맡았다. 39세에는 대둔사에 일지암(一枝庵)을 짓고 이후 40여 년 동안 주18하면서 저술과 교육에 전념하였다.

그는 『동다송(東茶頌)』을 짓는 등 다도를 실천하였고, 서예와 그림은 물론 범패원예에도 능했다. 주6로도 이름난 의순은 선과 주7 등의 교학에 정통하였다. 봉은사(奉恩寺)에서 『화엄경』을 간행할 때 주8로 참여하였고 달마산의 무량지회(無量之會) 때는 선석(禪席)에 주석하기도 했다. 1841년 두륜산 보련각(寶蓮閣)에서 대둔사 12대 종사와 강사, 역대 조사의 진영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1866년(고종 3) 세수 81세, 주9 65세로 서방을 향해 주10를 한 채 입적하였다. 대둔사에 그의 탑이 세워졌다. 의순의 주11신헌(申櫶)과 이희풍(李喜豊)이 썼다.

학문과 저술

초의 의순은 그의 선 주12, 학예 일치의 삶, 유학자와의 교류 등으로 인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당시 선의 기풍을 새롭게 떨친 백파 긍선과 함께 선의 분류 및 선과 교의 위상을 설정하는 선 논쟁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정약용이나 김정희 등 일류 문사들과 주13하면서 고증학적 방법론으로 불교사를 서술하고, 글과 그림, 다도 등 다양한 방면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삶과 사상은 선과 교의 병행, 유교와 불교의 공존이라는 당시의 시대성을 상징한다. 특히 긍선과의 선 논쟁은 19세기 불교 사상 및 불교 담론을 형성하는 데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의순은 『선문사변만어』에서 긍선의 오류를 하나하나 비판했는데, '근기의 우열에 따라 선을 차등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방편상으로, 사람을 기준으로 조사선여래선으로, 법을 기준으로 주14주15으로 보는 것이 전통적 통설'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선교겸수(禪敎兼修)를 기조로 한 조사선(祖師禪)과 화엄교학의 이중구조를 잘 보여준다.

저술로는 『선문사변만어』 1권, 『진묵조사유적고(震黙祖師遺蹟攷)』 1권, 『동다송』 1권, 『다신전(茶神傳)』 1권이 있고, 시문집으로는 『초의시고』 주16『일지암문집』 2권이 있다. 이중 『초의시고』에는 김정희, 정약용을 비롯한 이름난 유학자와 주고받은 시 100여 수와 다수의 산문이 포함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의순은 1840년(헌종 6) ‘대각등계 보제존자(大覺登階普濟尊者)’의 호를 국왕으로부터 하사받았고, 대둔사 제13대 종사로 추앙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대둔사지(大芚寺志)』
『동사열전(東師列傳)』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
『일지암문집(一枝庵文集)』
『초의시고(草衣詩稿)』,

단행본

김용태, 『조선 불교사상사』(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21)
이능화, 『조선불교통사』(신문관, 1918)

논문

김상현, 「초의선사(草衣禪師)의 다도관(茶道觀)」(『사학지』 10, 1976)
김용태, 「19세기 초의 의순의 사상과 호남의 불교학 전통」(『한국사연구』 160, 2013)

인터넷 자료

기타 자료

주석
주1

이름난 학자 밑에서 배우는 제자. 우리말샘

주2

스승에게 법맥을 이어받을 때에 받는 법호. 우리말샘

주3

승려가 되는 사람에게 종문(宗門)에서 지어 주는 이름. 우리말샘

주4

이름난 선비. 또는 유명한 유학자. 우리말샘

주6

계율에 정통한 승려. 우리말샘

주7

만행(萬行)과 만덕(萬德)을 닦아 덕과(德果)를 장엄하게 함. 우리말샘

주8

법회를 증명할 임무를 맡은 법사(法師). 우리말샘

주9

승려가 된 뒤로부터 치는 나이. 한여름 동안의 수행을 마치면 한 살로 친다. 우리말샘

주10

부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양발을 각각 반대편 넓적다리 위에 얹어 놓고 앉는 자세. 오른발을 왼쪽 넓적다리 위에 얹은 다음 왼발을 오른쪽 넓적다리 위에 얹는 방법을 ‘항마좌’라 하고, 그 반대 방법을 ‘길상좌’라 한다. 항마좌에서는 왼손을 오른손 위에, 길상좌에서는 오른손을 왼손 위에 겹쳐서 배꼽 밑에 편안히 놓는다. 우리말샘

주11

비석에 새긴 글. 우리말샘

주12

참선을 통해 본성을 터득한다는 선종의 사상. 우리말샘

주13

서로 사귀어 놀거나 왕래함. 우리말샘

주14

조사선

주15

여래선

주16

필사본 4권

주17

기록한 문서. 우리말샘

주18

선종에서, 승려가 입산하여 안주함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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