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식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전기 한성부좌윤, 병조참판, 전라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우계(羽溪, 지금의 강원도 강릉)
주요 관직
김해부사|동지중추부사|병조참판|전라도병마절도사
정의
조선전기 한성부좌윤, 병조참판, 전라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우계(羽溪). 아버지는 이지방(李之芳)이다. 대사헌 이감(李戡)의 아버지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무반승지로 불리는 선전관(宣傳官)을 거쳐, 1523년(중종 18) 세자익위사사어(世子翊衛司司禦)에 진출하였다.

1528년(중종 23)에는 첨정(僉正)에서 군기시부정(軍器寺副正)에 제수되었으나, 경력이 얕은 자가 갑자기 승진되었다는 대간의 논박으로 체직(遞職: 관직이 교체됨.)되어 김해부사로 내려갔다. 그러나 나이가 젊고 무재(武才)가 있는 자이기에 오히려 양계(兩界: 변방지역으로 국방을 위한 특수행정구역)에 적합하다는 대간의 지적에 따라 갑산부사에 제수되었다.

이후 종성부사를 거쳐 1533년(중종 28)에 가선대부로 승진하였고, 이어 여주목사·성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1544년(중종 39) 평안도절제사로 재직시 국경지역의 야인 진무에 공을 세웠고, 명종이 즉위한 뒤에도 임기가 차 체직되어야 하나 서쪽 변방의 일을 계속 맡아 보았다.

그 뒤 동지중추부사·상호군으로 지내는 동안 문소전(文昭殿)에 인종을 합부(合祔: 부부의 신위를 함께 모셔 제사를 올림.)하고, 세조의 신주(神主)를 옮기는 등의 일에 간여하였다. 1548년(명종 3) 한성부좌윤에 제수된 이래 병조참판을 거쳐, 1555년(명종 7) 전라도병마절도사로 제수되어 군령을 다잡고 남방의 방비에 힘썼다.

청렴하고 근실한 노장(老將)으로 이름이 높았다. 아들 이감(李戡)이 훈구외척 이량(李樑)과 결탁하는 것을 항상 책망하였으나 결국 화가 미쳤다.

참고문헌

『중종실록(中宗實錄)』
『명종실록(明宗實錄)』
『연려실기술(燃黎室記述)』
집필자
박홍갑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