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성삼(聖三). 아버지는 이재행(李在行)이다. 보은(報恩) 출신.
1784년(정조 8)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1794년에 진주목사가 되었다.
1807년(순조 7) 사간원사간으로 선산부사 민두혁(閔斗爀)과 민두혁을 천거한 전관(銓官)을 탄핵하고, 1808년 북청의 아전 전치정(全致貞) 등이 난동을 부리자 부사 심후진(沈厚鎭)을 파직 효수하고 그 후임이 되었다. 1821년 동래부사가 되었는데 그 이듬해에 경상좌도 암행어사 김정균(金鼎均)에 의하여 치적이 없다고 탄핵받았다.
이 해 다시 대사간을 거쳐 1823년에 의주부윤이 되었는데, 그 해에 이 고을사람 김진성(金振聲)이 국경을 넘어 도망하였다가 중국 봉성(鳳城)에서 붙잡힌 사건으로 탄핵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