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慶源) 출신으로, 고종 때 과거에 급제하고 직한림원(直翰林院)·보문각대제(寶文閣待制)가 되었다. 1265년(원종 6) 10월 시어사(侍御史)로서 하정사(賀正使)가 되어 원나라에 갔으며, 이후 우부승지를 역임하고, 충렬왕 즉위 이후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예부상서(禮部尙書) 한림학사승지(翰林學士承旨)로 치사(致仕)하였으며, 1277년(충렬 3) 11월 밀직부사로 세상을 떠났다.
몸가짐이 조용하고 품위가 있었다. 박문강기(博聞强記)하고 초서(草書)와 예서(隷書)를 잘 썼으며, 당대의 문장가 김구(金坵)와 친하였다. 충렬왕이 세자일 때 그 이름을 듣고 글을 지어 보내니 사람들이 부러워하였다고 한다.
원나라의 조양필(趙良弼)이 선무사(宣撫使)로 고려에 왔을 때 친교를 맺어, 뒷날 시를 지어 보내 안부를 물어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