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 (𡐔)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 중앙과 지방의 다양한 관직을 역임한 문신.
이칭
야수(野叟)
소옹(素翁)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08년(선조 41)
사망 연도
1668년(현종 9)
본관
벽진(碧珍)
주요 관직
형조참의
내용 요약

이인은 조선 후기 중앙과 지방의 다양한 관직을 역임한 문신으로, 1636년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으로 국왕을 호가(扈駕)하였다. 인조 재위 후반부터 삼사(三司)를 중심으로 하여 본격적으로 관직 활동을 하였고, 효종 대와 현종 대에는 주로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키워드
정의
조선 후기 중앙과 지방의 다양한 관직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이인(李𡐔)의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야수(野叟), 호는 소옹(素翁)이다. 조선 전기의 문신 평정공(平靖公) 이약동(李約東)의 후손이다. 고조할아버지는 이유번(李有蕃), 증조할아버지는 덕천군수(德川郡守)를 지낸 이석명(李碩明)이고, 할아버지는 교관(敎官) 이희선(李喜善)이다. 아버지는 병조참지를 지내고, 이조판서에 추증된 이상급(李尙伋)이다. 어머니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박주(朴胄)의 딸이다. 부인 달성서씨(達城徐氏)는 현감 서경빈(徐景霦)의 딸이자, 약봉(藥峯) 서성(徐渻)의 손녀이다.

주요 활동

계곡(谿谷) 장유(張維)의 문인이다. 1636년(인조 14) 사마시에서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입격하였는데, 이해에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대가(大駕)를 호종하였다.

1642년 문과에 급제한 후 같은 해 8월에 사변가주서(事變假注書), 9월에 예문관 검열에 임명되었다. 1643년 예문관 대교(待敎), 봉교(奉敎)를 거쳐, 1644년 성균관 전적(典籍), 사헌부 지평(持平)에 임명되었다. 지평으로 재직할 당시 호조판서 이명(李溟)의 부정함을 논박하였는데, 국왕의 엄한 배척을 받자 대사헌 이목(李楘)승지 조석윤(趙錫胤)이 이인을 변호하기도 하였다.

1645년에 세자시강원 필선(弼善), 1646년 5월에 은산현감(恩山縣監)과 석성현감(石城縣監)에 임명되었지만, 병으로 사직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같은 해 8월에는 영광군수에 임명되었는데, 영광군수로 부임할 때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이 시를 지어 전송하였다.

1648년 개성(開城) 경력(經歷)으로 부임하였는데, 주1를 숭상하고 받들기 좋아한 당시 개성부의 풍속을 변화시키려 노력하였다. 1649년 영암군수로 부임해서는 민폐에 대한 10여 가지 일을 조목조목 나열하여 상소하였다. 1651년(효종 2) 예조정랑으로서 영남의 주2을 조사하여 토호들의 겸병을 다스리고, 백성을 괴롭히는 아전 몇 사람을 축출하였다. 당시 이명(李溟)과 친분이 깊은 인물이 관찰사로 재직하고 있었기에 모함을 받고 원성(原城)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음 해에 풀려났다.

1657년 성균관 직강, 어영청(御營廳) 낭관, 북청(北靑) 판관(判官), 1658년 사예(司藝), 양양부사를 거쳐 이조판서 송준길(宋浚吉)의 천거를 받고 안동부사로 부임하였다. 1661년(현종 2) 정주목사 등을 지냈다. 이듬해 의주부윤으로 있을 때 청나라 역관의 힘을 믿고 주3하는 자들을 엄단하였다.

1664년 동부승지 · 성주목사, 1666년 형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1667년 제주목사로 재직할 당시 중국의 취안저우〔泉州〕와 장저우〔漳州〕의 주민 1백여 명이 표류하여 제주도에 도착하였는데, 조정은 그들이 표류해 온 일이 청나라에 누설될까 두려워서 그들을 포박하여 청나라로 압송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인조실록(仁祖實錄)』
『한수재집(寒水齋集)』
『현종실록(顯宗實錄)』
『효종실록(孝宗實錄)』
주석
주1

내력이 올바르지 않은 귀신을 모셔 놓은 집.    우리말샘

주2

자연의 재해로 농작물이 입는 피해.    우리말샘

주3

폐단을 일으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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