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경승(景升), 호는 동곡(桐谷). 아버지는 이계유(李繼礻+谷)이며, 어머니는 사천이씨(泗川李氏)로 통사랑 이수화(李秀華)의 딸이다.
10여세에 『소학』과 사서(四書)를 독파하였고 조식(曺植)을 찾아가 사숙하였다. 이 때 최효원(崔孝元)과 하호원(河浩元) 등과 사귀게 되어 그들의 추종을 받았다. 1567년(선조 즉위년)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진주와 경주의 훈도(訓導)로 있다가 1574년 성균관전적·사헌부감찰에 취임하였으나 조의(朝議)가 마음에 맞지 아니하여 귀향하였다.
그 뒤 봉상시주부를 제수하였으나 나가지 아니하고 원당정사(元堂精舍)를 짓는 등 학문에 정진하였다. 1577년 해미현감, 1579년 형조좌랑, 1580년 다시 형조좌랑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고 원당정사에서 세상을 떠나니 사림들이 이조를 애도하여 회장(會葬)하였다.
그 뒤 숙종 때 이르러 단성(丹城)의 두릉서원(杜陵書院)에 배향되고, 헌종 때에 성주(星州)의 안산서원(安山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동곡실기(桐谷實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