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연 ()

이조연 글씨
이조연 글씨
근대사
인물
개항기 때, 기계국총판, 이조참의, 협판군국사무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경집(景集)
완서(翫西)
시호
충정(忠貞)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43년(헌종 9)
사망 연도
1884년(고종 21)
본관
연안(延安, 지금의 황해도 연백)
정의
개항기 때, 기계국총판, 이조참의, 협판군국사무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경집(景集), 호는 완서(翫西). 이용규(李用奎)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80년(고종 17) 사헌부감찰로서 개항 후 처음으로 파견되는 수신사 김홍집(金弘集)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다녀왔고, 이듬해 다시 수신사 조병호(趙秉鎬)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1882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이해 고선관(考選官)으로 청나라에 가서 영선사 김윤식(金允植)을 따라 톈진[天津]에 간 유학생·공장(工匠)들의 실정을 조사하였다.

이어 흥선대원군이 임오군란 때에 조선에 진입한 청국군에 의하여 청나라에 끌려간 뒤 통리기무아문주사(統理機務衙門主事)로 사은 겸 진주사(謝恩兼陳奏使) 조영하(趙寧夏)의 종사관이 되어 청나라에 가서 흥선대원군 수금(囚禁)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귀국하였다.

이해에 청나라의 제도를 본떠 군제개혁이 단행되자 친군영좌감독(親軍營左監督: 뒤의 左營使)이 되고, 이어 참의교섭통상사무(參議交涉通商事務)·기계국총판(機械局總辦)·혜상공국총판(惠商公局總辦)·이조참의·함경북도병마절도사 등을 지냈으며, 1884년에는 협판군국사무(協辦軍國事務) 겸 기계국총판을 지냈다.

친청정치행적으로 개화당으로부터 사대당이라고 지목을 받아오던 중 1884년 갑신정변 때 우정국사건이 벌어지자, 이에 참석하였던 이조연이 국가대사가 벌어짐을 눈치채고 궐내로 들어가려던 중 전영사(前營使) 한규직(韓圭稷), 후영사(後營使) 윤태준(尹泰駿) 등과 같이 개화당 행동대에 의하여 피살되었다. 뒤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참고문헌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일성록(日省錄)』
『국조방목(國朝榜目)』
『공거일록(公車日錄)』
『기년속편(紀年續編)』
『갑신일록(甲申日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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