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태소(太素), 호는 목천(牧川). 이시술(李時術)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세필(李世弼)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이형좌(李衡佐)이며, 어머니는 윤지경(尹趾慶)의 딸이다.
1721년(경종 1) 사마시에 합격하고, 172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설서가 되고 교리(敎理)·부수찬·헌납·집의 등 청환직을 역임하였다. 1728년(영조 4) 한림·기사관을 거쳐, 이듬해 정언·검토관·수찬을, 1731년 이조정랑·부교리 등을 지냈다.
1732년 영남어사, 1733년 응교를, 1734년 사간·교리 등을 거쳤다. 1737년 대사간·승지를 거쳐, 1738년 대사성에 이어 광주부윤(廣州府尹)으로 나갔으며, 이듬해 대사헌이 되었다. 1740년 이조참의를 거쳐, 1741년 병조참지, 1749년 평안도관찰사로 파견되었다.
1751년 이조참판에 이어, 1752년 함경도관찰사·호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754년 형조판서로 동지부사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으며, 내의원제조와 공조·호조·이조의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756년 경기감사에 이어 형조판서가 되었다. 시호는 정민(貞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