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흥양(興陽). 전라북도 무주 출신.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에 항거하여 의병에 참가하였다. 1908년 덕유산을 근거지로 항쟁을 벌이던 의병장 문태수(文泰洙)의 휘하에 들어가 선봉장이 되었다.
같은 해 2월 6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무주주재소를 습격하였으며, 4월 150여 명으로 증강된 병력을 이끌고 장수에 들어가 관공서를 소각하였다. 1909년 5월 남원에서 1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일본헌병과 교전하였고, 8월 중순 문태수와 함께 영동·청산·옥천 등지에서 위세를 떨쳤으며, 10월 경부선 이원역을 습격하여 불태우고 일본군 3명을 생포하였다.
겨울이 닥치자 월동에 대비하여 무주의 본거지로 돌아와 영동·금산·진안·장수에서 여러 차례 일본군과 싸웠다. 이동안 문태수와 다수의 의병이 투옥되자 남은 병력을 규합하여 항전을 계속하다가 1910년 4월 18일 무주 흑석산(黑石山) 계곡에서 소수의 의병을 이끌고 다수의 왜적과 교전 중 전사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