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자서(子西), 호는 묵졸재(默拙齋)·묵재(默齋). 이우인(李友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상관(李尙觀)이고, 아버지는 별제(別提) 이지일(李志一)이며, 어머니는 의병 오익창(吳益昌)의 딸이다.
1648년(인조 26) 진사가 되고, 1673년(현종 1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정언·부제학을 역임한 뒤, 1677년(숙종 3) 동지자(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와 이 해 실시된 과거의 부정이 탄로되자 시관으로서 논죄되어 홍천에 도배되었다.
그러나 곧 용서되어 대사간·대사헌을 역임한 뒤, 1679년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또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병조참의를 거쳐 우부승지에 이르렀다. 경흥부사로 있을 때는 「북로편의십사조(北路便宜十四條)」를 상소하였으며, 여러 지방관을 지내는 동안 선정을 베풀었다.
항상 마음을 애민(愛民)에 두고 일체 당론을 말하지 않고, 시로도 유명하여, 한가하면 시 짓기에 여념이 없었다. 저서로는 『묵졸재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