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년(지마이사금 10)에 이찬(伊飡)이 되었다. 또, 이 때 흔련(昕連)은 파진찬(波珍飡), 임권(林權)은 아찬(阿飡)으로 함께 임명되었다. 이듬해 4월에 큰 바람이 불어 나무가 부러지고 기와가 날아갔다. 또, 서울사람들이 와언(訛言)하기를 왜병이 크게 쳐들어온다고 하여, 다투어 산골짜기로 숨어 달아났다. 이에 왕이 익종에게 명하여 타일러 안정시키라고 하였다.
이 미디어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비스에만 활용하도록 허가받은 자료로서, 미디어 자유이용(다운로드)은 불가합니다.
항목 내용 중 오류나 보충하여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미디어 또는 미디어 설명에 수정하여야 할 사항을 상세하게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대한 문의나 의견을 남겨주시면 검토하여 반영하겠습니다. 처리 결과는 의견·문의 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용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남겨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용 시 아래와 같이 출처를 표시해 주세요.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