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전(平壤錢)·신전(新錢)이라고도 불리는데, 평양에 분설된 전환국 주전소에서 주조하였다. 아연·주석·철 등에 30∼40%의 구리를 섞어 주조한 다음 구리를 도금한 악화(惡貨)로, 실질가치는 이전 상평통보 일문전의 3분의 1에 불과하였다. 전질(錢質)이 양호한 당오전 1매를 다시 주조하면 조악한 일문전 5매가 되어 25문의 가치로 통용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그레셤(Gresham)의 법칙이 현실적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통화량의 증대와 물가의 폭등을 야기시켜 생활고를 가속시켰다. 또한, 서울지역에까지 통용이 확대되어 당오전의 80% 내지 동일가격으로 유통되었다. 1890년 12월 19일 전환국에서는 화폐주조 원료공급의 편의를 도모한다는 이유로 평양부에 주전소를 분설할 것을 건의하였고, 이에 따라 평양부에 주전소가 설치되었는데, 평안도관찰사 민병석(閔丙奭)이 관장하였다. 처음에는 크기가 작고 전질이 조잡한 당오전을 주조하였고, 1892년부터 일문전을 주조하였다. 1894년 7월 8일 화폐제도 문란을 이유로 주조가 금지되었다. 짧은 기간 동안 주조, 유통되었지만 일문전은 민씨세력이 정치권력을 신장하고 정권을 연장하는 데 들어가는 재력을 제공해주었다. 평양부 주전소를 관장하였던 민병석은 거부가 되었고 왕실에다 수십만냥을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