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독립선언문 ()

근대사
문헌
1922년 보성사 사장 및 사원 일동이 한국의 독립을 선포한 선언서.
정의
1922년 보성사 사장 및 사원 일동이 한국의 독립을 선포한 선언서.
개설

1919년 3·1운동 때의 감격을 재현하기 위해 작성한 선언문이다. 선언문의 기초자는 이종일이다.

편찬/발간 경위

이종일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일제에 잡혀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3년 동안 감옥에서 복역하는 중 재거의 기회 포착을 꾀하며, 서울 시민과 합세해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할 결심을 하고 있었다(독립선언문의 초안도 그 자신이 직접 옥중에서 작성해 둔 것으로 보인다).

1921년 12월 22일 가출옥한 뒤 제3회 3·1절을 기해 독립만세시위운동을 추진, 실현시키기 위해 이 선언문의 인쇄작업을 하다가, 1922년 2월 27일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어 이 거사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내용

이 선언문은 먼저 “우리 대한은 당당한 자주독립국이며, 평화를 애호하는 세계에 으뜸가는 국민임을 재차 선언한다.”고 하여, 3·1독립운동의 실패에 대하여 두번째로 독립을 선언하였다.

국내에서는 마지막 선언문으로서, 3·1운동이 물리적으로 좌절되자 실의와 의기소침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어 가는 민족 진영의 모든 뜻있는 인사에게 ‘전통적인 독립의 의지를 만방에 천명한 것이고, 자유·정의·진리의 함성’이라고 하여 용기·신념·확신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그리고 1919년의 감격을 재현하기 위해 보성사의 사원 일동은 재차 봉기하여 끝까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신명을 바칠 것을 결의하고, 우리의 절대적인 주장은 오직 독립이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또한, 사회주의 풍조를 불식하고 오직 민중국가 건설에 매진하여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비록 지난번의 태평양회의에 내건 독립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해도 우리의 독립 의지는 변함이 없다고 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선언문은 3·1독립운동의 실패에 대한 두 번째 독립선언서라는 점, 일제 강점기에서 독립선언문으로는 거의 마지막이라는 점, 천도교인과 민중을 상대로 한 선언문이라는 점, 한문으로 된 선언문이라는 점 등의 특징이 있다.

참고문헌

『동학혁명(東學革命)과 민중(民衆)』(이현희, 대광서림, 1985)
『한국학(韓國學)』 28(영신아카데미한국학연구소, 1983)
집필자
김진봉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