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는 전하지 않으며, 창작경위만이 『고려사(高麗史)』 권71 악지 속악조에 전하고, 그 일부 내용이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106 악고(樂考)에 옮겨져 있다.
태조가 민간의 풍속을 순찰하고 부족한 것을 보급하여 선정을 베풀었기에 오래도록 백성들이 그 덕을 사모하였다. 그런데 후대의 왕이 장단에 갔을 때 악공이 태조의 덕을 기리고 후대 왕을 찬양하는 동시에 경계하는 「장단」을 노래하였다고 한다. 고려가요 중 송도가(頌禱歌)의 성격을 띠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