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최윤덕의 본적은 통천(通川), 자는 여화(汝和), 호는 임곡(霖谷)이다. 지중추부사 운해(雲海)의 아들로, 창원군 북면 내곡리(乃谷里) 무등촌(無等村)에서 태어났다. 권근(權近)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410년(태종 10) 무과에 급제하였다.
1419년(세종 1) 삼군도절제사로 이종무(李從茂)와 함께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1421년 공조판서, 1428년 병조판서에 올랐다. 1433년 야인 이만주(李滿住)가 침입하자 평안도도절제사가 되어 이를 격퇴하였다. 이 공으로 우의정에 특진되고, 1434년에 좌의정에 올랐다.
1445년(세종 27) 별세하자 3일간 조회를 중지하였다. 시호는 정렬(貞烈)이다. 세종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고, 안주 청천사(淸川祠), 통천 상렬사(尙烈祠)에 제향되었다.
묘는 호석을 둔 방형분으로, 좌우에는 문인석 2기가 있다. 봉분 하단은 커다란 호석을 2단 쌓은 다음 그 위에 봉분을 둥글게 성토하였다. 상석 바깥쪽으로 커다란 장대석을 다듬어 단을 쌓았고, 그 바깥에 다시 커다란 장대석을 쌓아 단을 만들었다.
묘비에는 ‘세종묘배향공신 우의정정렬공 최윤덕지묘 배정경부인○○자씨(世宗廟配享功臣 右議政貞烈公 崔潤德之墓 配貞敬夫人○○者氏)'라고 새겨져 있다. 묘비에 '숭정기원후삼병오(崇禎紀元後三丙午)'라는 기록이 있으므로 1846년(헌종 12)에 새롭게 묘비를 세운 것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총묘조(塚墓條)에는 “최윤덕의 묘는 창원부의 북쪽 20리에 있다.”로 되어 있다. 이 묘의 확실한 조성연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