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의덕(懿德). 예부상서·중추원사(中樞院使) 정배걸(鄭倍傑)의 아들이다.
유복자로 태어나 문과에 급제한 뒤 문종 때 비서랑(秘書郞)이 되었고, 선종이 즉위하면서 직한림(直翰林) 겸 사문조교(四門助敎)에 발탁되었다.
이어 우습유(右拾遺)가 되자, 대간에서 정문의 외조가 처인부곡(處仁部曲) 출신이므로 간관이 됨은 마땅하지 않다고 하므로 전중내급사 지제고(殿中內給使知制誥)로 고쳐 제수되었다가 지개성부사(知開城府事)를 거쳐 형부원외랑(刑部員外郎)이 되었다.
1105년(숙종 10)에 형부상서 정당문학 겸 태자빈객(刑部尙書政堂文學兼太子賓客)이 되고 검교사공 예부상서(檢校司空禮部尙書)가 더해졌다. 청렴·공정하여 형조를 10여 년 맡았으나 일을 잘 처리하였고,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받은 금백(金帛)을 종자에게 나누어주고 그 나머지로는 모두 서적을 사가지고 왔다 한다.
일찍이 서경에 호종하여 기자(箕子)의 사당을 세우도록 청하기도 하였다. 죽은 뒤 특진 좌복야 참지정사(特進左僕射參知政事)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