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송림사(松林寺)에 있었다. 특히 시를 잘 지었으며, 참지정사(參知政事) 정국검(鄭國儉)과 벗을 삼았다.
그가 살았던 원천동(元泉洞)의 큰 바위에는 “고불암 앞의 물이 슬피 울고 다시 목메어 우네. 한번 인간세계로 흘러가면 다시 구름산과 이별함을 한하여서 일세(古佛巖前水 哀鳴復鳴回 應恨到人間 永與雲山別).”라는 시를 적어놓았다. 정국검은 정사를 승려 가운데 용이라고 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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