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 ()

불교
인물
고려 전기, 왕사와 국사를 역임한 법상종 승려.
이칭
시호
혜소국사(慧炤國師)
법명
정현(鼎賢)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972년(광종 23)
사망 연도
1054년(문종 8)
본관
안성 이씨(安城 李氏)
출생지
경기도 안성군
주요 관직
왕사(王師), 국사(國師)
내용 요약

정현(鼎賢)은 고려 전기에 활동한 법상종의 승려이다. 출가 후 승과에 급제하였고, 법천사, 현화사, 칠장사 등 고려 전기 주요 법상종 사찰에서 주지를 지냈다. 고려 제11대 임금인 문종 대에 왕사(王師)와 국사(國師)를 역임하였다. 칠장사에서 입적한 후 왕명으로 비석이 조성되었다.

정의
고려 전기, 왕사와 국사를 역임한 법상종 승려.
가계 및 인적사항

정현(鼎賢, 972~1054)은 법명이고, 시호는 혜소국사(慧炤國師)이다. 정현은 972년(광종 23)에 경기도 안성군에서 출생하였다. 속성은 이씨(李氏)이고, 어머니는 김씨이다. 오래된 역사를 가진 안성 지역 토성(土姓)으로 이씨가 있고, 부모가 그를 갖기 위해 보라색 가사 1천 벌과 보현보살 불화 500점을 만들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정현은 안성의 유력 가문 출신인 것으로 추정된다. 980년(경종 5) 9세에 수원 광교사(光敎寺) 충회대사(忠會大師)에게 출가하였고, 994년(성종 13)에 안성 칠장사(漆長寺) 융철(融哲)의 문하로 옮겨 화엄종으로 출가했다. 이후 법상종으로 소속을 바꾸고 영통사(靈通寺) 주5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996년(성종 15) 미륵사(彌勒寺)에서 승과에 급제했다.

주요 활동

정현은 999년(목종 2)에 대사(大師)가 되었다. 1012년(현종 3) 무렵에는 법운사(法雲寺)와 속리산 아래 냇물에 각각 비둘기와 물고기를 방생하였다. 현종 대에 수좌(首座)로 승차했으며, 덕종이 즉위하자 오래된 주6을 보수하고, 왕명에 따라 법천사(法泉寺)에 머물렀다. 이후 승통(僧統)으로 임명되어 현화사(玄化寺)주7하였다. 1044년(정종 10)에는 광제사(廣濟寺) 앞에서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다. 1045년(정종 11) 삼각산에 사현사(沙峴寺)를 짓고 여행객들이 안전하게 다니고 묵을 수 있도록 하자 정종이 왕명을 내려 홍제원(弘濟院)과 서인관(棲仁館)이라는 주8을 하사했다. 1046년(정종 12) 음력 정월, 왕명으로 내전에서 『금고경(金鼓經)』, 즉 『금광명경(金光明經)』을 강의하였다. 1048년(문종 2)에는 문덕전(文德殿)에서 8권본 『금광명경』을 주9하며 설명하자 비가 내렸다. 1049년(문종 3)에는 봉은사에서 왕사(王師)로 책봉되었으며, 1054년(문종 8)에는 역시 봉은사에서 국사(國師)로 책봉되었다. 이후 하산소(下山所)인 칠장사로 돌아와서 머물다가 음력 11월 15일 문인들에게 임종계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나이 83세, 승랍 74세였다. 제자로는 영념(靈念), 인조(仁祚) 등 수십 명이 있다.

학문과 저술

화엄종으로 출가했다가 법상종으로 이적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정현은 유식학을 공부한 승려였다. 칠장사 융철의 문하에서 수학하던 시기에는 계율에 관심을 두고 주1을 공부하였으며, 『금광명경(金光明經)』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정현이 새와 물고기를 방생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구제하고, 여행객을 위해 사찰을 운영한 것 등은 『금광명경』의 영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려 전기 법상종에는 『유가론』 외에도 다양한 사상적 조류가 있었음을 정현의 활동을 통해 알 수 있다.

상훈과 추모

정현이 입적한 후 문종은 승관과 관리를 보내 칠장사 남쪽 언덕에 장사를 지내게 하였다. 또한 부의를 보내고 혜소국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한편 김현(金顯)에게 명하여 비문을 짓게 하고 민상제(閔賞濟)로 하여금 글씨와 주2을 쓰게 한 뒤, 1060년(문종 14) 음력 7월 칠장사에 주4를 세웠다. 이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는 정현의 사상과 생애를 전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원전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조선총독부, 1919)
이지관, 『(校勘譯註)歷代高僧碑文 : 高麗篇(2)』 (가산불교문화연구원, 1995)

논문

남동신, 「고려 전기 금석문과 法相宗」 (『불교연구』 30, 한국불교연구원, 2009)
남동신, 「칠장사혜소국사비명(七長寺慧炤國師碑銘)을 통해 본 정현(鼎賢)의 생애(生涯)와 사상(思想)」 (『한국중세사연구』 30, 한국중세사학회, 2011)
토니노 푸지오니, 『高麗時代 法相宗敎團의 推移』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박사학위논문, 1996)
주석
주1

삼장(三藏)의 하나. 부처가 제정한 계율의 조례(條例)를 모은 책을 이른다. 우리말샘

주2

전자체(篆字體)로 쓴 현판이나 비갈(碑碣)의 제액(題額). 우리말샘

주4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에 있는 고려 시대의 비. 문종 14년(1060)에 혜소 국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비석은 화강석과 흑대리석으로 만들었고, 몸돌 가운데가 갈라져 있던 것을 1975년에 비각을 복원하면서 함께 보수하였다. 보물 정식 명칭은 ‘안성 칠장사 혜소 국사비’이다. 우리말샘

주5

계(戒)를 주는 의식이 이루어지는 단(壇). 대체로 흙과 돌로 쌓아서 만들며 대승(大乘) 계단, 소승(小乘) 계단의 두 가지가 있다. 우리말샘

주6

공문을 전달하거나 관원을 마중·배웅하는 데 쓰이는 역참. 문화원형백과

주7

선종에서, 승려가 입산하여 안주함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8

종이, 비단, 널빤지 따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방 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는 액자. 우리말샘

주9

학술이나 도의(道義)의 뜻을 해설하며 토론함. 우리말샘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