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비 사순칭경진하도 병풍 ( )

조대비 사순칭경진하도병
조대비 사순칭경진하도병
회화
유물
문화재
1847년(헌종 13)에 왕대비 조씨(趙氏)의 40세 기념 진하례 광경을 그린 궁중 행사도.
정의
1847년(헌종 13)에 왕대비 조씨(趙氏)의 40세 기념 진하례 광경을 그린 궁중 행사도.
개설

「조대비 사순칭경진하도 병풍(趙大妃四旬稱慶陳賀圖屛風)」은 1847년 헌종의 어머니 왕대비 조씨(1808~1890)가 40세 된 것을 기념하여 거행된 진하례의 광경을 그린 궁중 행사도이다. 조씨는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1809~1830, 후에 익종으로 추존)의 부인으로, 고종이 즉위한 후 대왕대비로서 수렴청정을 한 신정왕후(神貞王后)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1847년 1월 1일에 헌종은 창덕궁 인정전에 나아가 치사(致詞: 왕의 덕을 칭송하여 올리는 글)·전문(箋文: 나라의 길흉의 일이 있을 때 왕에게 아뢰던 글)·표리(表裏: 선물로 올리는 옷의 겉감과 안감)를 직접 올리고 문무백관의 진하를 받았다. 「조대비 사순칭경진하도 병풍」은 이 1월 1일의 진하례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내용

「조대비 사순칭경진하도 병풍」은 8첩 병풍으로, 제1첩부터 제7첩까지 진하례의 모습이 한 장면으로 그려지고 제8첩에는 좌목이 쓰여 있다. 화면의 중심이 되는 제3·4·5첩에 인정전과 인정문까지의 영역을 상대적으로 크게 배치하고 나머지 첩에는 그 좌·우로 연결된 주요 전각들이 그려져 있다. 제2첩 위쪽에 푸른색 지붕을 드러낸 건물은 선정전이다. 각 첩의 윗부분에는 서운(瑞雲)을 배치하여 상서로운 느낌을 부여함과 동시에 먼 거리를 축약하거나 생략하는 효과를 냈다. 인정전 대청의 어탑(御榻)에는 일월오봉병을 배경으로 어좌와 호위 의장(儀仗)이 배치되고 어탑 아래에는 승지와 사관들이 엎드려 있다. 앉아 있는 뒷모습의 인물은 치사문을 낭독하고 있는 대치사관(代致詞官)이며 이는 진하도임을 말해 주는 중요한 도상이다. 뜰에는 금관조복을 입은 문무백관들이 줄 맞추어 앉아 있다.

좌목은 ‘왕대비전 보령사순칭경 진하도(王大妃殿寶齡四旬稱慶陳賀圖)’라는 제목으로 시작하여 행사의 내용을 정확히 말해 준다. 좌목은 오위도총부 도총관 조익영(趙翼永, 1817~?)·이노병(李魯秉, 1780~?), 부총관 홍학연(洪學淵, 1777~1852)·이희조(李羲肇, 1776~?)·서염순(徐念淳, 1800~?)·성수묵(成遂默, 1792~?)·김기만(金箕晩, 1793~?)·김정집(金鼎集, 1808~1859)·오취선(吳取善, 1804~?) 등 9명의 관직과 성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오위도총부의 총관은 도총관 2명과 부총관 8명으로 구성되는데 이때에는 부총관 1명이 임명되지 못하여 9명만이 기록되어 있다. 좌목에도 ‘일원 미차(一員未差)’라고 설명되어 있다. 좌목의 마지막 줄에는 이들 총관 중에서 조익영, 이노병, 서염순, 김정집 등 4명이 보검(寶劍)을 역임하였음이 명시되어 있다. 보검은 어탑에 올라 어좌의 바로 좌·우에서 왕을 호위하던 상징적인 자리였다. 이 같은 좌목의 내용은 이 병풍이 조선시대 오위를 총괄하던 오위도총부에서 주도하여 제작한 계병(契屛)임을 확실하게 말해 준다.

특징

19세기 궁중 기록화의 주제 중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궁궐의 정전(正殿)에서 거행된 진하례의 모습을 그린 진하도이다. 화면 중앙에 배치된 정전을 중심으로 그 좌우로 주요 전각이 파노라마 식으로 펼쳐지는 장대한 광경을 8첩 병풍에 그리는 것이 보통이다. 19세기의 진하도는 건물을 정면에서 부감하는 시점에서 그려지는 형식과 사선 방향에서 비스듬히 부감하는 형식의 2가지로 대별된다. 이 「조대비 사순칭경진하도 병풍」은 그 중에서 궁중 기록화의 전통적인 시각 구성법을 계승한 전자(前者)의 형식을 대표하는 그림이다.

의의와 평가

「조대비 사순칭경진하도 병풍」은 조선시대 궁궐의 정전 의식을 대표하는 진하례의 화려한 면모를 자세한 필치로 묘사하였다. 또한 19세기 정면 부감 형식의 진하도를 대표하는 그림으로서, 19세기에 유행한 궁궐도의 발달과 유행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그림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조선시대 궁중 기록화 연구』(박정혜, 일지사, 2000)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박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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