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교풍회 ()

목차
근대사
단체
1919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친일단체.
이칭
이칭
교풍회, 경성교풍회
목차
정의
1919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친일단체.
내용

단순히 ‘교풍회’로만 호칭되기도 하며, 설치된 지역명을 붙여서 ‘경성교풍회’로 불리기도 한다.

이 조직은 1919년 7월 20일 경성부윤 가네야(金谷充)가 조선인 유력자 100명을 경성호텔에 초청, 상호융화친목·인우상조(隣佑相助)·질서유지·풍속개량 등을 표방하면서 ‘경성교풍회’를창립하게 한 데서 시작되었다.

경성교풍회는 회장 윤치호(尹致昊), 부회장 김중환(金重煥)·유문환(劉文煥)·한상룡(韓相龍), 고문에 가네야·민영기(閔泳綺)·민원식(閔元植)·조진태(趙鎭泰)였다. 이들 중 한상룡은 이완용의 생질인 거물 친일자본가, 조진태는 경성상공회의소(京城商工會議所) 부회두·상업은행 취체역·중추원 칙임참의, 민원식은 국민협회장인 친일거물이었다.

이러한 진용에서 알 수 있듯이, 경성교풍회는 귀족·친일지주·예속자본가와 친일분자를 중심으로 한 관주도(官主導)의 친일화 민풍개량 단체였다.

조선총독 사이토(齋藤實)는 1919년 8월 부임 직후부터 이것을 ‘조선교풍회’로 개칭하면서, 지방행정기관의 지원 아래에 13도 각처로 확산시켰으며, 「교풍단체표창규정」 등을 만들어 정책선전과 독립사상파괴에 크게 이용하였다.

참고문헌

『일제의 한국침략정책사』(강동진, 한길사, 1980)
집필자
임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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