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조형신(曺亨信)

근대사인물

 일제강점기 대한청년단 단장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조형신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일제강점기 대한청년단 단장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평안남도 강서 출신. 1919년 3월 4일, 장로인 아버지 조진탁(曺振鐸) 등이 주도한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상사리의 사천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
강서군 시위는 일제 헌병과의 일대격전으로 발전하고 400여명이 검거되었는데, 아버지는 원산으로, 자신은 평양으로 각각 피신하였다. 아버지는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뒷날 체포되어 사형당하였다.
1919년 10월 도피중, 김예진(金禮鎭)·최봉주(崔奉周) 등과 함께 대한청년단(大韓靑年團)을 조직, 단장에 선출되어 상해임시정부와 연락하고 『독립신문』의 배포, 군자금모금 등 독립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1921년 일본경찰에 붙잡혀 4월 5일 평양지방법원 진남포지청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 북간도로 망명, 홍범도(洪範圖) 휘하로 들어간 강진석(康晋錫)을 찾아가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일본경찰의 감시가 심해지자 1927년 5월 북간도 용정(龍井)으로 피신하여 활동하다가 조국광복을 맞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상훈과 추모
1968년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김진봉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