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선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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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많이 사용되었던 재래식 어망.
이칭
이칭
어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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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에 많이 사용되었던 재래식 어망.
내용

중선망의 어구·어법은 원추형의 긴 자루와 같이 생긴 어망 2통(統)을 어선의 양 현(舷)측에 달고 어장에 이르러 닻으로 어선을 고정시키고 조류를 따라 내왕하는 어류가 어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기다려 어획하는 것이다. 이 어망의 기원은 적어도 수백 년 전으로 소급될 것으로 생각된다. 문헌상으로는 영조 때의 자료에 보인다.

즉, 『일성록』(영조 24년 11월 28일조)에는 위도에서의 중선(中船)으로 어획하는 어장은 이익이 많다는 내용의 글귀가 보인다. 중선은 조수의 간만차가 심하고 조류가 빠른 어장이 그 사용 적지이므로 그러한 조건을 지닌 서해안에서 일찍부터 발달하였던 것이다. 중선망은 어조망(漁條網)이라고도 불렀다.

『임원경제지』에는 어구의 하나로서 어조망을 소개하고 있다. 이는 해양어구로서 해어(海魚)가 내왕하는 데는 어기와 회유로가 있는데, 어부는 때를 살펴 출어하여 닻을 내리고 조로(條路)에서 어망을 배의 밑바닥에 달아 어류를 잡으므로 어조망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연해 어부는 그 배를 중선이라 하고, 그 그물은 중선망이라고 하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어망의 구조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어망은 삼으로 만드는데 길이가 45파(把), 망구(網口) 주위가 48파라고 하였다. 어기에 대어군이 몰려올 때는 어망이 아주 크지 않으면 이를 모두 수용할 수 없고, 어선이 아주 크지 않으면 이를 모두 실을 수 없으며, 부호(富戶)는 거액을 들여 어선과 어망을 마련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고 하였다.

한말의 중선망을 보면 조기를 주어획대상으로 하는 것과 새우를 잡기 위한 것의 2종이 있었다. 모두 칡덩굴 섬유로 만들었고, 조류를 이용하는 어법이므로 간조 때뿐만 아니라 만조 때에도 어획할 수 있었다. 어망의 꼬리 부분은 개폐가 가능하게 되어 있다.

참고문헌

『일성록(日省錄)』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한국어업사』(박구병, 정음사, 1975)
『한국수산업사』(박구병, 태화출판사, 1966)
『한국수산지』(농상공부, 1908)
집필자
박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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