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사 ()

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의 관직.
이칭
이칭
지성사, 지원사, 지부사(知府事), 지부사(知部事), 지사사, 지관사
내용 요약

지사는 고려시대의 관직이다. 지성사·지원사·지부사·지사사·지관사 등으로 불렀다. 여러 관부에 설치되었는데, 외직으로 지병마사(知兵馬事)와 지서경유수사(知西京留守事), 지주사·지군사 등도 있었다. 품계는 일정하지 않았다. 지문하성사와 상서성·중추원지사의 품계는 종2품, 삼사지사는 정3품, 지병마사·지서경유수사는 3품 이상, 지주사·지군사는 5품 이상이었다. 1275년 원나라의 간섭으로 관제가 개편될 때에는 존속되었다가 1277년에 폐지되었다. 1356년 대대적인 관제개혁이 단행되면서 다시 설치하였다.

정의
고려시대의 관직.
개설

여러 관부에 설치되어 있었으며, 소속 관부에 따라 지성사(知省事)·지원사(知院事)·지부사(知部事)·지부사(知府事)·지사사(知司事)·지관사(知館事) 등으로 일컬어지기도 했고, 품계는 일정하지 않았다.

내용 및 변천사항

문종관제에서는 중서문하성의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를 비롯해 상서성·중추원·삼사, 이부·병부·호부·형부·예부·공부 등 상서육부(尙書六部), 어사대(御史臺)·어서원(御書院)·합문(閤門)·대부시(大府寺)·태사국(太史局)·첨사부(詹事府) 등에 두었다.

외직으로는 동북면·서북면의 지병마사(知兵馬事)와 서경의 지서경유수사(知西京留守事), 주·군(州郡)의 지주사·지군사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지문하성사와 상서성·중추원지사의 품계는 종2품, 삼사지사는 정3품, 지병마사·지서경유수사는 3품 이상, 지주사·지군사는 5품 이상이었다. 그 밖에 상서육부·합문·대부시의 지사는 겸관(兼官)으로 되어 있었다. 정원은 대개 1인이었다.

1116년(예종 11)에 첨사부의 지사가 폐지되고, 서경의 분사태사국(分司太史局)과 전례사(典禮司)에 새로이 지사를 두었다. 하지만 다시 1136년(인종 14)에 혁파되었으며, 같은 해에 지서경유수사 역시 혁파되었다.

1275년(충렬왕 1)에 중서문하성이 첨의부(僉議府)로, 추밀원(樞密院 : 중추원)이 밀직사로, 상서육부가 전리사(典理司)·군부사(軍簿司)·판도사(版圖司)·전법사(典法司) 등 4사로, 어사대가 감찰사(監察司)로, 합문이 통례문(通禮門)으로 각각 개편되는데, 지사는 그대로 존속하였다. 다만 상서성이 폐지됨에 따라 지상서성사는 폐지되었다.

1277년에 세자첨사부(世子詹事府)가 설치되면서 그 속관으로 다시 지사를 두었다. 1298년충선왕이 즉위해 밀직사를 폐지하고 전리사·군부사·판도사·전법사 등 4사가 전조(銓曹)·병조·민조(民曹)·형조·의조(儀曹)·공조 등의 6조로, 감찰사는 사헌부로 관제를 개편하면서 지사는 폐지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에 충선왕이 퇴위하고 관제가 복구됨에 따라 밀직사와 4사에 지사를 다시 두었으며, 이 때 지밀직사사는 정원이 2인으로 늘었다.

1308년에 충선왕이 복위해 다시 한번 관제를 개혁하자 밀직사와 삼사를 제외한 모든 중앙관부의 지사가 혁파되었다. 그 해에 신설된 제용사(濟用司)에 정5품, 정원 2인의 관직으로 지사를 두었으나, 1310년(충선왕 2)에 곧 혁파되었다. 그 뒤 춘추관에 2품 이상이 겸임하는 지사가 새로 설치되었다.

1356년(공민왕 5)에는 또다시 대대적인 관제개혁이 단행되어 중서문하성과 추밀원·합문·태사국 등이 부활되고 지사를 다시 두었다. 이와 동시에 고려 전기 이후 존속해왔던 지삼사사가 삼사의 폐지와 함께 혁파되었다.

1362년에는 중서문하성이 도첨의부로, 추밀원이 밀직사로, 합문이 통례문으로 각각 개편되었으나 지사는 그 속관으로 존속하였다. 다만 태사국이 서운관으로 병합됨에 따라 태사국지사는 혁파되었다.

1368년에는 사헌부의 종3품 관직으로 지사와 겸지사(兼知事)가, 5·6품 외직으로서 각 도 도통사(都統使)의 지사가 각각 새로 생겼다. 1372년에는 사헌부 지사가 집의(執義)로 개칭되었다. 공민왕 때에는 환관 관부인 내시부(內侍府)에 정3품, 정원 1인의 관직으로 지사가 설치되었다가 우왕 때에 혁파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정치제도사연구(高麗政治制度史硏究)』(변태섭, 일조각, 1971)
집필자
이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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