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청은 국왕에게 서경(西京)으로 수도를 옮겨, 칭제건원(稱帝建元)하여 정치적 혁신을 꾀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 주장이 실패로 돌아가자 1135년(인조 13)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대위(大爲)라 하고, 연호를 천개(天開)라 하였다. 그러나 김부식(金富軾) 등 관군의 토벌로 묘청이 죽음으로써 대위국과 천개의 연호도 함께 없어졌다. → 연호(年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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