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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교육(靑少年敎育)

    교육개념용어

     12, 13세에서 24, 25세 정도의 연령에 있는 청소년들이 가정과 사회의 바람직한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도와 주기 위하여 학교 및 학교 밖에서 실시되는 조직적인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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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청소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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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실기경진대회
    분야
    교육
    유형
    개념용어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2, 13세에서 24, 25세 정도의 연령에 있는 청소년들이 가정과 사회의 바람직한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도와 주기 위하여 학교 및 학교 밖에서 실시되는 조직적인 교육.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청소년의 연령적 구분은 목적과 시대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성적(性的) 발달과 정체성(正體性)의 확립 요구, 신체적 발달 등 아동기와 성인기의 과도기에서 볼 수 있는 신체적·심리적·사회적 특징으로 보아, 중학교·고등학교 및 대학에 다니고 있는 연령층의 인구집단을 포함하여 청소년교육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교육적으로 의미가 있다.
    넓은 의미의 청소년교육은 학교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교육은 흔히 ‘학교교육’이라고 독립적으로 호칭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좁은 의미의 청소년교육도 학교교육을 보충하기 위하여 또는 그와 병행하여 청소년들에게 실시되는 학교 밖의 직업교육, 사회교육단체나 청소년단체에 의하여 실시되는 심신수련교육과 야영교육과 같은 것을 의미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들은 무한한 발달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또한 미래사회의 주역이라는 점 때문에 청소년교육의 목표·내용·방법·체제·시설 등이 사회의 특수한 관심과 보호를 받고 있다.
    현대 산업사회의 특징을 청소년기와 관련하여 볼 때에 청소년기가 길어진 것을 들 수 있다. 농업 중심의 전통사회에서는 청소년기의 시작과 함께 결혼을 하고 성인생활을 시작하였으므로, 오늘날처럼 청소년교육이 분화되어 존재하지 않은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은 어느 시대에나 사회적으로 중요시되어 존재하여 왔다.
    (1) 고대사회
    고구려시대의 경당(扃堂)과 신라시대의 화랑도(花郎道)는 우리 나라 고대사회에서 주목할만한 청소년교육의 형태이다.
    태학(太學)이 고구려에서 상류층의 자제들을 대상으로 하는 관학인 데 비하여, 경당은 고구려가 평양에 천도한 이후 전국 각지에 설치된 일종의 사학(私學)교육기관으로 평민 자제들을 대상으로 경전(經典)과 무술을 함께 교육하였다.
    전통사회에서의 청소년교육이 대개 그러하듯이 경당은 이론과 실천, 지식과 행동의 일치를 강조한 생활교육으로서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신라시대의 화랑도는 청소년 수양단체로서 지도자격인 몇몇 화랑과 단체원인 수천 명의 낭도로 구성되었다.
    지도자인 화랑은 인격·덕망·용모 등이 출중한 남녀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도의를 닦고 시와 음악을 즐기며, 명산대천을 찾아 심신을 수련하면서 사회의 중심인물을 양성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다.
    김유신(金庾信)·사다함(斯多含)·관창(官昌)·원술(元述) 등 덕망과 전술이 뛰어나고, 국가를 위하여 개인의 목숨을 돌보지 않은 사회의 훌륭한 지도자가 화랑 출신이었음을 볼 때, 화랑도를 통한 청소년교육의 의미는 신라의 국가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신라의 화랑도가 무술이나 신체단련 뿐만 아니라 덕망과 인격의 수련을 중요시하였으며, 그것이 국가발전의 바탕을 이루게 된 데에는 신라사회 그 자체가 가지고 있었던 문화적 축적과 높은 의식수준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
    신라의 화랑도는 삼국을 통일한 뒤의 신라사회에 퇴폐적인 풍조가 나타나면서 쇠퇴하여갔으나, 화랑도의 정신과 제도는 우리 청소년교육의 이념과 방향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하겠다.
    (2) 고려와 조선시대
    고려와 조선시대의 청소년교육은 학교교육을 통하여 실시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국자감(國子監)·향교(鄕校)·서당(書堂) 등의 교육기관에서 서울과 지방의 청소년들에게 교육을 실시하였다. 특히 최충(崔冲)의 사학(私學) 12도(十二徒)는 사학교육기관으로서 학문발전에 큰 몫을 담당하였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성균관(成均館)·사부학당(四部學堂)·향교·서원(書院)·서당 등에서 고려시대보다 훨씬 더 체계적으로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 시대의 청소년교육은 학교교육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유교적인 인간을 양성하는 데 그 목적을 두었다.
    지식을 학습하는 목적은 유교적 덕목을 형성하기 위한 것이며, 올바른 인간이 되는 데 있었다. 여기서 올바른 인간이 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민족과 국가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의 기회가 일부 청소년들에게만 주어졌고, 교육내용이 도덕적이고 철학적이기는 하였으나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면은 결여되어 있었다.
    (3) 근대 이후
    우리 나라에서 근대식 학교가 설립되고 청소년교육에 큰 변화가 온 것은 조선시대 말인 1880년대이다. 관공립학교를 비롯하여 민족교육 지도자들과 서양의 선교사 등이 여러 형태로 근대식 학교를 설립하면서 유교적인 청소년교육도 다양하게 변화되었다.
    개화기의 청소년교육에서 특기하여야 할 것은 20세기 초에 전개된 교육구국운동이다. 일제의 침략을 받아 국가가 위기에 처하자, 전국에 수천 개의 사립학교가 설립되면서 신학문 수용에 의한 근대화와 애국심 고취에 의한 정신교육이 구국교육으로 나타났이다.
    교육구국운동은 일제에 의한 국권상실과 함께 탄압을 받았다. 그렇지만 민족의 발전과 민주화 등의 이념은 우리 나라 근대 청소년교육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20세기 초에는 청소년단체인 YMCA가 우리 나라에 창설됨으로써 학교교육뿐 아니라 학교 밖에서 청소년단체에 의한 근대문화 발전과 청소년들의 심신수련 및 교육사업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개화기를 거쳐 일제강점기에서는 식민지적인 청소년교육과 이에 저항하는 민족교육자들의 노력이 대립하는 가운데 제2차세계대전의 종말과 함께 새로운 청소년교육의 시기를 맞게 되었다.
    건국 이후 청소년교육이 체계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산업화가 가속되기 시작한 이후부터이다.
    1960년대를 중심으로 한 고도 경제성장 속에서 청소년들의 의식구조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가정과 학교의 교육적 기능이 약화되어 청소년들의 탈선과 비행이 증가하고, 사회적으로는 물질주의와 고도 소비성향풍조가 만연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소년들이 사회에 적응하고 산업화에서 오는 사회해체현상을 극복하며, 우리의 역사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건전한 주인공으로 성장하도록 하기 위하여 범국가적인 청소년정책과 교육방향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65년 처음으로 『청소년백서 靑少年白書』가 마련되었고, 1972년에 제2호, 1975년에 제3호가 발간되었는데, 여기에는 청소년 선도의 문제점과 해결방향 등이 제시되어 있다.
    그 뒤에도 『청소년백서』가 계속 발간되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에서는 1977년부터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관계부처장관과 청소년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청소년대책위원회를 설치, 청소년들의 건전육성과 보호를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종합적으로 추진하여 왔다.
    그 동안 정부에서 추진해 온 청소년정책을 살펴 보면 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것, ② 학교 밖에서의 청소년지도, ③ 근로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것, ④ 비행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것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것은 의무교육의 충실화를 위한 문교부의 노력, 입학시험제도의 개선, 실업교육진흥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정규 학교에 다니지 않는 근로청소년들을 위한 정책으로는 방송통신교육의 실시, 산업체 부설학교 설치, 청소년의 직업훈련, 새마을교육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청소년들의 심신단련을 위한 수련시설 건립은 1970년대에 나타난 매우 두드러진 현상의 하나이다. 1973년 경상북도 경주시 4만여 평의 부지에 매 기당(期當) 3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화랑교육원을 설립한 것을 비롯하여, 충청남도 아산, 경기도 강화, 강원도 명주, 서울특별시 사직동 등에 학생교육원이 차례로 설립되었다.
    국가가 상당한 예산을 들여 정규 학교시설 이외에 이러한 수련시설을 전국 곳곳에 설치한 것은, 1970년대에 볼 수 있는 중요한 청소년교육정책의 변화라고 하겠다. 학생들을 제외하고 나면 근로청소년에 대한 교육이 청소년교육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1991년에는 한국청소년연구원이 설립되었고, 1993년에는 이 기관이 한국청소년개발원으로 바뀌었다. 다시 1993년에는 청소년대화의 광장이 설립되었다. 이들 기관은 청소년들의 수련·봉사활동·상업활동 등을 체계화하고 활성화 하는 데 주력하고 있으며, 조직적인 청소년교육을 실시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1997년의 『청소년백서』에 의하면 1996년 현재 우리 나라에는 241만 4,000명의 취업청소년이 있다. 그리고 그 중 3만 명은 농림업에, 64만 1,000명은 광공업에, 174만 3,000명은 사회간접자본 및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을 남녀 비율로 보면 남자가 90만 9,000명이고, 여자가 150만 6,000명으로 여자가 많다. 미래의 청소년교육문제를 전망하여 볼 때에 그 중요성은 더욱 증가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화에 따른 청소년기의 연장과 청소년들이 느끼게 되는 무력감, 소득상승에 따른 여가의 증가, 도시화의 진전과 가치관의 갈등증대 가능성, 개방성과 자율성의 요구증대, 가정 및 학교교육 기능의 약화와 청소년 비행의 증가 가능성 등은 모두 청소년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이에 대응하는 청소년교육의 강화가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 청소년들이 미래사회 발전의 주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변동하는 산업사회에서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생활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 인격교육의 중요성, 건전한 청소년문화 형성, 생산적인 여가이용, 청소년 비행의 예방과 치료 등이 청소년교육에서 크게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서는 청소년들의 교육환경 개선, 청소년들을 위한 여가시설 확충, 체계적인 여가교육 실시, 청소년단체의 교육활동 강화와 적합한 교육프로그램의 개발, 대중매체의 교육기능 강화, 청소년문제에 관한 과학적 연구 추진 등의 과제가 평생교육적인 차원에서 폭넓게 검토되어야 한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차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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