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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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가
작품
조선 후기에 정우량(鄭羽良)이 지었다는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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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정우량(鄭羽良)이 지었다는 가사.
내용

한국학중앙연구원 도서관에 소장된 필사본 한문소설 「임경업장군전(林慶業將軍傳)」에 부록되어 있다.

이 가사는 조선 인조 때의 무신 임경업의 전기적인 내용을 율문 형식인 가사체로 엮어 놓은 작품으로 주인공의 가문과 출생을 비롯하여 입조(入朝) 전후에 일어났던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서술하고 있다. 형식은 4음보 1행을 기준으로 모두 75행이다.

‘총병가’라는 제명은 임경업이 명(明)의 반도(叛徒)를 토벌한 공으로 명나라에서 받은 총병대장(摠兵大將)의 벼슬에서 연유한 것이다. 이 가사는 「탄중원가(嘆中原歌)」(명나라의 쇠망을 탄식한 노래)란 시조 형식의 여음(餘音)을 지니고 있는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가사의 내용도 뛰어난 궁마술로 무과에 급제하여 국가에 공을 세워 국은을 입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비롯하여, 이괄(李适)의 난에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 1등이 되었고, 병자호란 때는 좌영장이 되어 강화로 들어갔으나 화의(和議)가 성립된 뒤였으므로 전공을 세울 기회를 얻지 못한 안타까움을 노래하고 있다.

또다시 평양중군 선천방어사(宣川防禦使) 등으로 기용되어 가는 곳마다 산성을 쌓아 국방을 튼튼히 하였으며, 또한 명나라의 반도(叛徒)를 토벌한 공으로 명나라에서 총병대장의 벼슬을 받은 사실을 노래하였다.

그리고 호란에 직접 참전하지 못하고 변방에 머무르면서 왕세자나 삼학사의 거국행을 송별한 통한의 정과 청나라에 짓밟히는 명나라와 함께 청나라를 치려고 하였으나 도리어 청나라가 명나라를 치자고 청병하여 왔으므로 마지못하여 출전한 사실과 이 때에 명나라 군사와 밀통한 것이 드러나 다시 청나라로 압송된 사실을 노래하고 있다.

또한 도중에 도망쳐와 삭발하고 중이 되었다가 다시 장삿배를 거짓 꾸며 타고 남경(南京)으로 들어가 명장(明將)과 합세하여 또 청나라를 치려 하다가 간첩의 모략으로 사로잡혀 청나라로 다시 압송되어, 호왕(胡王)이 온갖 설유를 하였으나 굴하지 아니하고 다만 왕세자와 대군을 고국으로 되돌아오게 한 사실을 칭탄하였다.

마침내 되돌아 온 임장군이 김자점(金自點)의 모해로 죽음을 당하게 된 사실을 담고 있다.

이 가사는 밖으로는 국제간에 벌어진 치열한 각축전의 와중에 휩싸였고, 안으로는 정쟁(政爭)의 틈바구니에 끼여 희생된 한 충의사인 임장군의 원사(寃死)를 신원(伸寃)하고 원혼을 달래보는 안타까운 심회를 읊은 작품이다.

임경업의 전기적인 산문 작품은 여러 가지 전(傳)이나 소설의 형태로 지어진 국문본 또는 한문본의 산문류가 한 무리를 이루고 있으나, 이 작품은 율문류의 가사 형태로 지어진 새로운 유형의 작품이다.

정격가사의 율격형식을 갖춘 사류가사(士類歌辭)의 전형을 지닌 작품으로서, 배청향명사상(背淸向明思想)을 바탕으로 주인공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슬픔을 탄상하고 원혼에 대한 신원과 위령(慰靈)을 위하여 지어진 애도가사(哀悼歌辭)이다.

참고문헌

「총병가탄중원가고」(홍재휴, 『국문학연구』9집, 효성여자대학교, 1986)
집필자
홍재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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