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연백 출신. 1919년 3·1운동 후 만주로 망명하여 홍범도(洪範圖) 장군이 지휘하던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에 가입하였고, 1920년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에 대한독립군 제1대대 제3중대 특무정교(特務正校)로 참전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다.
이 해 겨울 여러 독립운동단체가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으로 통합되었으며, 1921년 1월에 노령(露領)으로 들어가서 통합 군대인 고려혁명군에 배속되었으나 곧 자유시참변(自由市慘變)을 겪었다. 참변 뒤 이르쿠츠크(Irkutsk)로 이동, 고려혁명군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졸업 뒤 만주로 돌아와 여러 독립투사와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지속하였다.
1930년 12월 최악(崔岳)·오광선(吳光鮮)·심만호(沈萬浩) 등과 함께 한국독립군(韓國獨立軍) 총사령관 지청천(池靑天)을 따라 호로군총부(護路軍總部)에 가서 한중연합군(韓中聯合軍) 구성을 위하여 크게 활약하였으며, 일본군의 진출로 만주에서의 독립운동이 불가능하게 되자 1933년 5월 황학수(黃學秀)·오광선과 함께 중국 산해관(山海關)으로 옮겨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