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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몽량(崔夢亮)

조선시대사인물

 조선시대 의주판관을 역임한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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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시대 의주판관을 역임한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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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명(啓明). 병마절도사 최인(崔隣)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안세(崔安世)이고, 아버지는 최확(崔確)이며, 어머니는 유경심(柳景深)의 딸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612년(광해군 4)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17년에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1625년(인조 3)에는 의주판관이 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을 당하여 종현(鍾峴)에서 독전(督戰)하였는데, 적군을 선도하는 강홍립(姜弘立)을 발견하고 나라를 배반하고 적군을 돕는다고 꾸짖다가 포로가 되었다. 이 때 끝내 굴복하지 않고 죽었는데, 그의 동생과 아들들도 모두 함께 순국하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의주구암사(龜巖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8년)
박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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