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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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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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울 시내에 있던 난전(亂廛)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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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서울 시내에 있던 난전(亂廛) 시장.
내용

지금의 서소문 밖에 있었다. 설치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이미 18세기 전반기에 이현(梨峴)·종가(鍾街 : 종로)와 함께 서울의 가장 큰 상업중심지의 하나로 발전하였다.

칠패에서는 시전과 마찬가지로 미곡·포목·어물 등을 비롯한 각종의 물품이 매매되었는데, 그 중에서 어물전(魚物廛)이 가장 규모가 크고 활발하였다. 당시 서울의 시전상인(市廛商人)들이 판매하는 상품은 대개 지방의 생산자가 직접 서울로 와서 팔거나 또는 행상이 개입해 생산자와 시전상인을 연결시켜 공급하였다.

칠패의 사상도고(私商都賈)들은 자신이 직접 지방에 내려가 어물을 구입하거나, 지방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어물을 길목에서 매점하는 방법으로 어물을 확보함으로써 시전 어물전에의 어물공급에 차질을 빚었다.

또한, 1791년(정조 15)의 신해통공(辛亥通共)이 있기 전까지 육의전(六矣廛)을 비롯한 서울의 시전상인들은 서울에서의 난전을 금지시킬 수 있는 금난전권(禁亂廛權)을 행사하였다.

칠패의 어물상들은 금난전권의 영향을 받지 않는 서울 주변의 사상도고들과 결탁해 안전하게 어물을 구입하고 판매하였다. 즉, 칠패의 어물상은 광주의 송파(지금의 서울특별시 송파구 가락동 일대)와 도봉산록의 누원점(樓院店), 그리고 칠패를 연결하는 유통체계를 갖추어 삼남지방에서 유입되는 어물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포천의 송우점(松隅店)에서 누원점을 거쳐 칠패에 이르는 통로를 통해 동부지역, 특히 원산지방에서 들어오는 어물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 칠패의 난전 도고상인들은 독점한 어물의 가격을 자의로 조절할 수 있어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게 되자, 이 부를 기반으로 점차 시전의 어물상을 압도해갔다.

참고문헌

『영조실록』
『정조실록』
『순조실록』
『비변사등록』 각전기사(各廛記事)
『경도잡지』
『한국지(韓國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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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에 있어서의 도가상업의 새로운 전개」(김영호, 『한국사연구』 2, 1968)
「16세기 장시의 성립과 그 기반」(이경식, 『한국사연구』 56, 1987)
「책가장시권의 변화」(최성기, 『안동문화』 8, 1987)
「조선후기 장시의 사회적 기능」(김대길, 『국사관논총』 37, 1992)
집필자
이성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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