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능 ()

불교
인물
조선시대 『소요당집』을 저술한 승려.
이칭
소요(逍遙)
시호
혜감(慧鑑)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2년(명종 17)
사망 연도
1649년(인조 27)
출생지
전라남도 담양
정의
조선시대 『소요당집』을 저술한 승려.
개설

성은 오씨(吳氏). 호는 소요(逍遙). 법명은 태능(太能). 전라남도 담양 출신.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전법제자(傳法弟子)이자 소요파(逍遙派)의 개조(開祖)이다.

생애와 활동사항

13세에 백양산(白羊山)의 경치에 감화 받아, 진대사(眞大師)로부터 계(戒)를 받고 출가하였다. 그 후, 속리산과 해인사 등지에서 부휴(浮休)에게 주1을 익혔는데, 부휴의 수백 명의 제자들 중, 태능 · 충휘(沖徽) · 응상(應祥)이 법문(法門)의 삼걸(三傑)이라 불렸다.

그는 묘향산으로 휴정을 찾아가 주2 화두를 물었다. 문답한 뒤, 휴정은 주3을 전하고 3년 동안 지도한 뒤, 개당설법(開堂說法)을 하게 하였다. 그 뒤 휴정에게 다시 탁마한 후, 크게 깨달았다. 1624년(인조 2) 남한산성의 서성(西城)을 보완하였으며, 지리산의 신흥사(神興寺)와 연곡사(燕谷寺)를 중건하였다. 1649년 11월 21일 법문과 임종게를 설하고 나이 87세, 주4 75세로 입적하였다.

학문세계와 사상

그는 선(禪)과 교(敎)를 하나의 근원에서 파생한 두 가지 흐름으로 보는 전통적 견해를 취하였는데, 이러한 사상과 경향은 서산대사와 일맥상통한다. 『소요당집서(逍遙堂集序)』에서는, 서산대사의 뛰어난 제자들 중에 오직 그만이 선지(禪旨)를 통달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본래청정(本來淸淨)하고 자재하며 완전한 일물(一物)인, 우리의 자성(自性)이 구체적 현실 속에서 참된 주인공으로서 작용하는데, 이 참주인공을 자각한 사람만이 온전한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선사상이 실참실수(實參實修)를 통한 체험에 있음을 실감하고, 상징적인 비유를 통하여 개념적인 지식을 초월하여 바로 그 실상을 실감하도록 하는 선종의 방법으로 제자들을 깨우치려 하였으며, 철두철미하게 불교를 주체적으로 깨닫도록 하고자 노력하였다. 뛰어난 제자로는 현변(懸辯), 계우(繼愚), 경열(敬悅), 학눌(學訥), 처우(處愚), 천해(天海), 극린(克璘), 광해(廣海) 등이 있으며, 그 밖에 소요파로 불리는 수백 명의 제자들이 있었다. 저서로는 『소요당집』 1권이 있다.

상훈과 추모

사리를 연곡사 · 금산사(金山寺) · 보개산(寶蓋山) 세 곳에 나누어 모시고 부도(浮屠)를 건립하였다. 그를 흠모한 효종은 1652년(효종 3) 혜감선사(慧鑑禪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이경석(李景奭)을 시켜 비명(碑銘)을 지어 금산사에 세우게 하였다.

참고문헌

『소요당집(逍遙堂集)』
『한국불교사상사(韓國佛敎思想史)』(숭산박길진박사화갑기념사업회, 원불교사상연구원, 1975)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이능화, 신문관, 1918)
주석
주1

부처가 말한 교법. 우리말샘

주2

선원에서, 불법의 근본이 되는 뜻을 이르는 말. 조사(祖師) 달마가 전한 불법의 의취(意趣)라는 뜻이다. 우리말샘

주3

가사(袈裟)와 바리때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4

승려가 된 뒤로부터 치는 나이. 한여름 동안의 수행을 마치면 한 살로 친다.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김위석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