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상륙작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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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전쟁 중 해병대 김성은(金聖恩) 부대가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는 통영반도에 최초로 적전상륙작전을 감행하여 통영을 탈환한 작전.
내용 요약

통영상륙작전은 1950년 해병대 부대가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던 통영을 탈환한 작전이다. 1950년 8월 전선은 통영을 점령한 북한군이 거제도까지 점령하려고 하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해병대 김성은 부대는 통영에 상륙해 적을 섬멸하는 작전을 감행했다. 통영에 상륙한 해병대는 통영 시내에 있는 북한군을 소탕하고 해상으로 도주하는 자들을 격침하였다. 이 작전에서 북한군 469명을 사살하고 많은 무기를 빼앗는 대전과를 올렸다. 외신은 이 승리에 대해 ‘귀신잡는 해병’이라고 보도했다. 이 작전은 우리 해군·해병이 최초로 성공시킨 단독 상륙작전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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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50년 6·25전쟁 중 해병대 김성은(金聖恩) 부대가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는 통영반도에 최초로 적전상륙작전을 감행하여 통영을 탈환한 작전.
내용

1950년 8월에 접어들자 전선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서로 대치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동부 전선에서는 포항 외곽에서, 중부 전선에서는 주2 등지에서 혈전이 계속되었고, 서부 전선에서는 진동리로 침입한 적이 마산 · 진해 · 부산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병대의 맹렬한 공격에 의해 공격 기세가 꺾여 본래의 의도인 마산 · 진해 · 부산 등지로 직접 침입하는 것이 곤란해지자, 거의 무방비상태에 놓여 있는 통영반도를 먼저 점령한 뒤 거제도를 점령하여 마산항진해만을 봉쇄하려고 하였다.

예상한 바와 같이 1950년 8월 16일 미명을 기하여 고성으로부터 통영으로 향한 북한군 제7사단 제51연대와 제104치안연대의 650명이 1950년 8월 17일 새벽 1시통영시내로 침입해 왔다. 이와 같이 긴박한 상황이 발생하자 해병대 김성은 부대는 즉시 거제도에 상륙하여 통영으로부터 거제도에 침입하려는 적을 격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1950년 8월 17일 새벽 3시 김성은 부대는 해군함정 512호정과 평택호에 나누어 타고 통영반도 동북방 1㎞ 지점에 있는 주1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거제도 서해안을 방어하는 것보다 통영반도에 상륙하여 적을 섬멸하는 것이 작전상 유리하다고 판단, 통영 근해를 경비하던 해군함정 703 · 901 · 504 · 512 · 302 · 307호정 및 평택호 등의 지원 엄호하에 8월 17일 18시 통영반도 동북방에 있는 장평리에 상륙을 개시하였다.

한편, 해군함정들은 협조된 계획에 따라 통영항 내에 접근하여 매일봉 · 남망산 및 부두에 포격을 가하기 시작하였고, 해병대를 상륙시킨 512호정과 평택호도 남하하여 함포 사격에 가담하였다. 적은 해병대가 통영항구 정면으로 상륙할 것으로 판단하고, 고지에 배치하였던 병력을 통영 남해안 일대에 집결시켜 해안선에 배치시켰으므로 접전 없이 상륙할 수 있었다.

상륙을 완료한 해병대는 밤을 새워 가며 맹렬한 공격작전을 감행하여 8월 18일 새벽 제2중대가 원문고개로 진격하여 방어진을 구축하고, 제7중대는 통영전투에서 승패의 관건이 되는 매일봉을 점령하였다. 이에 당황한 적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8월 18일 12시부터 해군함정의 지원 사격을 받으며, 8월 19일 10시까지 통영시내 소탕작전을 벌여 잔적을 완전히 소탕하였다.

해병대의 적극적인 소탕작전에 전의를 상실한 적은 퇴로를 차단당하자 목선 3척을 이용하여 해상으로 도주하다가 해상을 경비하던 504 · 512호정에 의해 격침되었다. 통영상륙작전을 성공리에 완수한 해병대는 적의 유일한 공격로이며 통영 공격의 전술상 요지인 원문고개에 강력한 방어진을 구축하여 빈번히 습격해 오는 적의 대부대를 치열한 육박전을 감행하면서 격퇴시켰다.

1950년 9월 23일 서울탈환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인천으로 출항할 때까지 통영을 평정하여 당시 이 작전에 종군했던 외신기자들은 ‘귀신잡는 해병’이라는 특필보도로 저마다 최대의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작전에서 적 사살 469명, 포로 83명, 따발총 128정, 아식소총 107정, 권총 13정, M1소총 3정, 기관단총 14정, 박격포 2문, 지프차 2대, 트럭 10대, 전화기 5대 등과 많은 포탄 · 수류탄 등을 빼앗는 대전과를 올렸으며, 아군은 19명이 전사하고 47명이 부상을 하였다.

이 작전은 우리 해군 · 해병들이 최초로 성공시킨 단독 적전 상륙작전이었을 뿐만 아니라 유엔군을 방어하기 위한 철수작전 중 유일한 공격작전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해병전투사』(해병대사령부, 1957)
『대한민국해군사』-작전편 1·2-(해군본부, 1954·1958)
『증보판 해병전투사』 1(해병대사령부, 1962)
주석
주1

거제도 북방 연안

주2

경상북도 칠곡군에 있는 읍. 경부선 철도가 지나며 낙동강 수로(水路)의 종점이다. 동남쪽에 있는 평야에서는 담배, 사과 따위가 난다. 칠곡군의 군청 소재지이다. 면적은 54.12㎢.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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