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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도치(必闍赤)

고려시대사제도

 고려 최씨무신정권의 정방(政房)에 속하였던 문사(文士)에 대한 총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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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
비칙치, 비체치, 필차제(筆且齊), 문사
분야
고려시대사
유형
제도
성격
관리
시행시기
1225년
폐지시기
1388년
시대
고려-후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고려 최씨무신정권의 정방(政房)에 속하였던 문사(文士)에 대한 총칭.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한자어로 ‘필도적(必闍赤)’으로 표기하나 필도치, 비칙치, 비체치 등으로 읽는다. 필도치는 필차제(筆且齊)라고도 쓰였으며, 몽고어로 문사를 뜻하는 말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1225년(고종 12)최우(崔瑀)가 사제(私第)에 정방을 설치하고 인사를 사적(私的)으로 처리하였는데, 문사를 뽑아 들여 임원(任員)을 삼고 이를 필도치라 하였다.
정방의 임원은 정색승선(政色承宣)과 정색서제(政色書題)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중 인사행정에 있어서 왕에게 직접 아뢰는 일을 맡는 자를 정색승선이라 하였는데, 3품이면 정색상서(政色尙書)라 하였고, 4품 이하이면 정색소경(政色少卿)이라 하였다. 정색승선은 흔히 승선 중에서 임명되었으며 정방원의 총책임자였다. 정색상서는 아래로 정색소경과 정색서제를 통솔하였는데, 정방에서 실무를 담당한 자들 중에 가장 높은 지위에 있었으며 위로는 정색승선을 보좌하였다. 정방의 구성원은 모두 4명을 원칙으로 하는데, 보통 정색승선 1명, 정색상서 1명, 정색소경 1명, 정색서제 1명(혹은 2명)으로 구성되었다. 정색서제는 정색상서와 정색소경의 지휘 하에 필갑(筆匣)을 가지고 서기(書記)의 직을 맡아보았다.
최씨무신정권이 몰락한 뒤의 일이지만 『고려사(高麗史)』 김주정(金周鼎) 열전을 보면, 충렬왕 때 김주정의 건의를 참문학사(參文學士) 박항(朴恒), 밀직부사(密直副使) 설공검(薛公儉), 좌승지(左承旨) 이존비(李尊庇), 판예빈사(判禮賓事) 염승익(廉承益), 보문서대제(寶文署待制) 곽예(郭預), 대부소윤(大府少尹) 안전(安戩) 등을 정방의 필도치에 임명하였다는 것이 보인다.
영역닫기영역열기변천
정방은 무신집정이 전주권을 사유화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였기 때문에 최씨정권기 뿐만 아니라 이후의 김준정권기와 임연·임유무정권기 등 무신정권기가 끝날 때까지 인사행정을 독단하였던 권력의 핵심기관으로 기능하였다. 정방은 무신정권이 붕괴된 이후에도 왕이나 재상 등의 측근세력을 등용시키는 중요한 인사기구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계속 존재할 수 있었다. 특히 1278년(충렬왕 4) 이후의 필도치는 왕권강화를 위해 측근세력들로 구성된 기구로서 재추회의(內宰樞)의 기능을 대신한 것으로 파악된다.
정방은 충목왕대 이후 치폐를 거듭하다가 1357년(공민왕 6) 폐지되고 인사권의 기능이 이부와 병부에 환원되었는데, 이는 왕권을 강화하고 고려의 구제(舊制)로 돌아가려는 공민왕의 개혁의지가 표명된 것이었다. 하지만 1361년 부활한 것으로 보이며, 1388년(창왕 즉위년)상서사(尙瑞司)로 고치면서 혁파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고려말기 정방의 변화와 제조의 등장」(김창현,『사총』44,1995)

  • 「고려후기 정방의 구성과 성격」(김창현,『한국사연구』87,1994)

  • 「고려정방고」(김성준,『사학연구』13:『한국중세정치제도사연구』,일조각,1985)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민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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