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객건연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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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문신 유금(柳琴)이 이덕무 · 유득공 · 박제가 · 이서구의 시를 초록하여 1777년에 간행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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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문신 유금(柳琴)이 이덕무 · 유득공 · 박제가 · 이서구의 시를 초록하여 1777년에 간행한 시집.
내용

1776년(영조 52) 유득공의 작은아버지 유금(柳琴)이 연행(燕行) 길에 가지고 가서 홍대용(洪大容)을 통하여 이미 문통이 있었던 이조원(李調元)·반정균(潘庭筠)의 서문을 얹어 1777년 중국에서 간행하였다.

개인시집이 아니고 네 사람의 작품집이었기 때문에 뒤에는 ‘사가시집(四家詩集)’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 뒤에 1917년 및 1921년에 ‘전주사가시(箋註四家詩)’라는 표제로 박경길(朴景吉)이 주를 달고 백건칠(白建七)이 교정하여 재판을 간행하였다.

≪한객건연집≫의 내용을 작가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이덕무는 육언시 1, 칠언절구 28, 오언율시 14, 칠언율시 48, 오언고시 3, 칠언고시 5로 모두 99수이다. 유득공은 육언시 8, 오언절구 1, 칠언절구 35, 오언율시 19, 칠언율시 19, 오언고시 13, 칠언고시 1, 동금언(東禽言) 4로 모두 100수이다. 박제가는 육언시 1, 오언절구 6, 칠언절구 25, 오언율시 18, 칠언율시 45, 오언고시 4, 칠언고시 1로 모두 100수이다. 이서구는 육언시 3, 오언절구 3, 칠언절구 28, 오언율시 14, 칠언율시 28, 오언고시 13, 칠언고시 1로 모두 100수이다.

≪한객건연집≫에서 사가의 특징은 답습(踏襲)·진부(陳腐)를 버리고 독창·참신을 주장한 점이다. 이덕무는 <증인지임금교찰방 贈人之任金郊察訪>이라는 시에서 늘그막에 벼슬길에 나서는 노인과 모여서 웃고 있는 소년을 대비시켜 묘사하였다.

지저귀는 새소리와 휘날리는 살구꽃 속에 뽐내며 날뛰는 말들을 감각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시를 읽고 중국인 이조원도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고 평하였다. 그의 시의 소재는 조선의 산천자연, 자기의 생활주변에서 가려 다분히 감각적으로 읊었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眞景山水)의 화풍은 이들의 영향이 적지 않다고 본다.

≪발해고 渤海考≫를 지은 유득공은 역사의식이 강한 시인이다. 『이십일도회고시 二十一都懷古詩』는 그의 역사의식을 잘 나타낸다. 음향성에 밝은 그는 민족의 역사를 음향성을 감안하여 읊고 외우기 쉬운 시형식을 빌어서 고취하고 싶었던 것으로 본다. 이 땅의 자연이야말로 시의 참된 소재임을 인식하고 조선의 자연과 풍물을 시로 읊었다. 널뛰는 모습, 그네 타는 모습을 한폭의 풍속도를 보듯 그려나갔다.

이서구는 나이가 가장 어렸으나 비교적 중후한 맛이 있는 시를 썼다. 이서구를 제외한 셋은 서출이어서 관로가 널리 트이지 못하였다. 그래서 학문·예술의 세계에 정진할 수 있었다. 이들은 실학사상의 영향으로 공통적으로 답습·진부를 싫어하고 독창·참신으로 나아갔다. 따라서 사가시는 실학사상 위에 핀 꽃이라 하겠다.

참고문헌

『연암집(燕巖集)』
『전주사가시(箋註四家詩)』
『정유집(貞蕤集)』
『영재집(泠齋集)』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조선조후기 한시(漢詩)연구』(정양완, 성신여자대학교출판부,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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