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한호운(韓浩運)

조선시대사인물

 조선후기 성균관학유, 전적 등을 역임한 문신.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한호운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후기 성균관학유, 전적 등을 역임한 문신.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문익(文翼). 정주 출신. 한흥보(韓興輔)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한웅태(韓雄泰)이고, 아버지는 한순빈(韓順彬)이며, 어머니는 김정만(金鼎滿)의 딸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한효자(韓孝子)’로 일컬어진 효자이기도 하다. 1800년(정조 2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전적 등을 지냈다.
당시 이조에서 그의 청직한 성품을 알고 사헌부나 사간원의 관직에 임용하고자 하였을 때, ‘이름있는 관직을 얻게 되면 잇속[利]을 불러오게 되고 잇속을 가까이하면 의(義)를 모두 잃게 되는 것’이라 하여 이를 거절하였다.
1811년(순조 11) 홍경래(洪景來)의 난이 일어나자 홀로 적진에 나아가 난군(亂軍)에게 항복할 것을 권유하다가 살해되었다. 백경한(白慶翰)·임지환(林之煥)과 더불어 청북삼렬(淸北三烈)이라 일컬어졌으며, 예조판서에 추증되고 향리에 충신정문(忠臣旌門)이 세워졌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8년)
조원래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