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욱 ()

황정욱 영정
황정욱 영정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증기에, 대제학, 예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경문(景文)
지천(芝川)
시호
문정(文貞)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32년(중종 27)
사망 연도
1607년(선조 40)
본관
장수(長水)
주요 관직
대제학|예조판서·병조판서
목차
정의
조선 증기에, 대제학, 예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경문(景文), 호는 지천(芝川). 영의정 황희(黃喜)의 후손이며, 황섬(黃蟾)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황기준(黃起峻)이고, 아버지는 황열(黃悅)이며, 어머니는 양천허씨(陽川許氏)로 허용(許墉)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52년(명종 7) 주1에 합격하고, 1558년 주2주3로 급제하였다. 사관(史官)이 된 뒤 승문권지(承文權知) · 주4 · 주5 등을 거쳐 시강원설서에 제수되었다. 1561년 호조 · 예조좌랑을 역임하였다.

이듬해에 해미 현감으로 나갔다가 성균관 직강이 되었다. 1565년 헌납지제교 · 부수찬 등을 거쳐 지평을 지냈다. 당시 세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명종이 병이 나자, 훌륭한 선비를 뽑아 종실을 가르칠 것을 청하였다.

1580년(선조 13) 진주목사를 거쳐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다. 그 뒤 승지에 올랐으며, 1584년 종계변무주청사(宗系辨誣奏請使)로 명나라에 가서 사명을 완수하고 돌아왔다. 그 공으로 동지중추부사가 되고 이어 주6로 승진하였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에 연좌되어 파직되었다가 곧 복직되었다. 이듬해 종계변무의 공으로 광국공신(光國功臣) 1등이 되어 장계부원군(長溪府院君)에 책봉되면서 대제학이 되었다. 이어 주7 · 주8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호소사(號召使)가 되어 왕자 순화군(順和君)주9주10으로 피신하였다. 여기서 의병을 모집하는 격문을 돌렸다. 그러나 왜군의 진격으로 주11에 들어갔다가 국경인(鞠景仁)의 모반으로 왕자와 함께 포로가 되어 주12의 토굴에 감금되었다.

이 때 왜장 가토(加藤淸正)로부터 선조에게 보내는 항복 권유문을 쓰도록 강요받았다.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그의 손자와 왕자를 죽이겠다는 위협을 받자 아들 황혁(黃赫)이 대신 썼다. 한편, 항복 권유문이 거짓임을 밝히는 또 하나의 글을 썼으나 선조에게 전달되지 못하였다.

이듬해 왜군이 부산으로 철수할 때 석방되었다. 그러나 항복 권유문을 기초한 문제가 동인 · 서인 간의 정치쟁점이 되면서, 이후 정권을 장악한 동인의 집요한 공격을 받아 주13에 유배되었다. 1597년 왕의 특명으로 석방되었으나, 복관되지 못한 채 죽었다.

문장 · 시 · 서예에 능하였다. 저서로는 『지천집』이 있다. 1623년(인조 1)에 신원(伸寃: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되었으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참고문헌

『명종실록(明宗實錄)』
『선조실록(宣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지천집(芝川集)』
『학곡집(鶴谷集)』
『송자대전(宋子大全)』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주석
주1

생원과 진사를 뽑던 과거. 초시와 복시가 있었다. 우리말샘

주2

식년마다 보던 식년과의 시험 가운데 문과를 이르는 말. 식년과에는 식년 문과, 식년 무과, 식년 잡과가 있었다. 우리말샘

주3

조선 시대에, 과거 합격자를 성적에 따라 나누던 세 등급 가운데 셋째 등급. 문과(文科)에서는 23명, 무과(武科)에서는 20명을 뽑아 정구품의 품계를 주었으며, 성균관ㆍ승문원ㆍ교서관의 임시직인 권지(權知)에 임명하였다. 우리말샘

주4

고려 시대에, 사초(史草)를 기록하는 일을 맡아보던 정구품 벼슬. 충렬왕 34년(1308)에 예문춘추관에 두었다가 공민왕 11년(1362)에 예문관에 소속시켰다. 우리말샘

주5

조선 시대에, 예문관에 속하여 임금의 교칙을 마련하는 일을 맡아보던 정칠품 벼슬. 우리말샘

주6

조선 시대에, 호조에 속한 으뜸 벼슬. 품계는 정이품이다. 우리말샘

주7

조선 시대에 둔 예조의 으뜸 벼슬. 공양왕 원년(1389)에 예의판서를 고친 것으로 정이품 문관의 벼슬이다. 우리말샘

주8

조선 시대에 둔, 병조의 으뜸 벼슬. 품계는 정이품으로, 군사와 국방에 관한 일을 총괄하였다. 우리말샘

주9

임금이나 높은 사람을 모시고 따라가는 일. 우리말샘

주10

강원도에서 대관령 동쪽에 있는 지역. 우리말샘

주11

함경북도 회령군에 있는 읍. 만주와의 교통 요충지이며, 석탄ㆍ목재ㆍ곡물 따위의 집산지이다. 군청 소재지이다. 면적은 12.42㎢. 우리말샘

주12

함경남도 안변군에 있는 면. 경원선과 동해 북부선이 나뉘는 곳으로, 사과ㆍ배가 난다. 군청 소재지이다. 면적은 65.9㎢. 우리말샘

주13

함경북도 길주군에 있는 읍. 군청 소재지이다.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윤용혁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