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양군 ()

대동여지도 중 강원도 회양 부분
대동여지도 중 강원도 회양 부분
인문지리
지명
강원도 북부 중앙에 위치한 군.
정의
강원도 북부 중앙에 위치한 군.
개설

동쪽은 통천군, 서쪽은 평강군, 남쪽은인제군·양구군·철원군, 북쪽은 함경남도 안변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7°22′∼128°08′, 북위 38°25′∼38°55′에 위치하며, 면적 1,899.81㎢, 인구 9만2122명(1944년 현재)이다. 7개 면 146개 이로 되어 있으며, 군청 소재지는 회양면 읍내리이다.

자연환경

군의 동부에는 태백산맥의 해안 지맥인 금강산맥이 뻗어 있어서 우동산(雨動山, 1,036m)·오봉산(五峰山, 1,261m)·금강산(金剛山, 1,638m)·국사봉(國師峰, 1,385m) 등이 솟아 영동과 영서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으며, 서부에는 철령산맥이 함경북도와 경계를 이루며 풍류산(風流山, 1,024m)이 솟아 있다.

하천은 북한강 상류가 안풍면을 북류하면서 깊은 침식곡을 형성하며 곡류하다가 상북면에서 남서류하고 회양 부근에서 사두포천(沙頭浦川)과 남곡천을 합류해 남류한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금강천(金剛川)은 동부를 남류해양구군에서 북한강에 합류한다.

평지는 적으나 회양분지가 비교적 넓으며, 난곡면은 고원지대를 이루고 있으나 유읍리 부근에 넓은 습지가 있다. 기후는 한서의 차가 큰 대륙성기후로 연평균기온 8.1℃, 1월 평균기온 -9.3℃, 8월 평균기온 22.9℃, 연평균강수량 1,141㎜이다.

역사

고대

구석기시대의 유적은 발견된 적이 없고, 신석기시대 유적의 흔적이 회양면 읍내리에서 발견되었다.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 사동면 하사동리와 하지석리에서 탁자식 고인돌 1기씩이, 인접군인 김화군 통구면 백양강(白楊江)에서 고인돌 2기가 발견되어 청동기시대에는 이 지역에 사람이 살고 있었을 뿐 아니라, 성읍국가(城邑國家)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초기철기시대에는 동예의 일부 지역이었거나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되며, 이 때의 명칭이 가혜아(加兮牙)였을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토로서 각련성군(各連城郡) 또는 객련성군(客連城郡)이라 하다가 신라 진흥왕 때에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 들어 757년(경덕왕 16)에 연성군(連城郡)으로 개칭되어 삭주(朔州)에 포함되었으며, 단송현(丹松縣)·질운현(帙雲縣)·희령현(淮嶺縣) 등을 영현으로 거느렸다.

고려시대

고려 초에는 이물성(伊勿城)이라 했으며, 995년(성종 14)교주(交州)로 개칭되고 단련사(團練使)가 두어졌다가 1018년(현종 9)에 단련사가 혁파되고 대신 방어사(防禦使)가 파견되었다.

이 무렵 장양군(長楊郡)·금성군(金城郡)·남곡현(嵐谷縣)·통구현(通溝縣)·기성현(岐城縣)·화천현(和川縣) 등이 내속해 속현이 되었으며, 고려 중기 이후 5도·양계의 지방제도가 정비되면서 교주도에 속하였다. 1308년(충렬왕 34)회주목(淮州牧)으로 승격되었다가 1310년(충선왕 2)에 회양부(淮陽府)로 다시 낮추어졌다.

조선시대

1394년(태조 3) 강원도관찰사의 관할이 되었으며, 1413년(태종 13)에는 회양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15세기 중엽에 호수 407호, 인구 1,078명, 군사 158명으로 당시로서는 매우 큰 행정구역이었다.

세조 때에는 진관도호부(鎭管都護府)가 두어져 1도호부(철원)와 7현(양구·난청·금성·이천·평강·김화·안협)을 통관하였다. 1610년(광해군 2) 조방장(助防將)을 두었고, 1618년 철령(鐵嶺)에 성을 쌓을 때 방어사를 두었다가 1624년(인조 2)에 폐지하였다. 1695년(숙종 21)에는 토포사(討捕使)를 두어 금성·흡곡·통천·고성·간성 등 5군을 통관하였다. 1746년(영조 22)에는 진관도호부가 철원으로 이관되었다.

근대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가 개편되면서 회양군으로 고쳐져 춘천부에 속했다가 다음 해에 다시 강원도에 소속되었다. 1899년 회양군의 가구수는 3,702호였다. 1907년 군대해산과 함께 전국적으로 의병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자 이 곳 주민들도 대거 참여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1907년 12월 13일 회양 북쪽 모덕리에서, 1908년 4월 30일 회양 동쪽 30리 지점에서, 1909년 4월 22일 회양 서남쪽에서 의병이 왜군과 접전을 벌였다. 1919년 3·1운동 때에도 회양군민들이 만세시위에 많이 참가하였다.

회양군 주민인 김천일(金千鎰)이 3월 2일 평강 천도교구장 이태윤(李泰潤)으로부터 〈독립선언서〉 120매를 받아 32매를 통천군에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회양군의 군청·면사무소·헌병대의 게시판에 붙이거나 각 마을에 배포하였다.

정작 시위운동이 일어난 것은 4월 14∼16일로 14일에는 하북면 선암리에서, 15·16일에는 하북면 초일리에서 일어나 많은 사람이 붙잡혔다. 시위를 주동한 인사는 김천일을 비롯해 유인경(柳寅景)·박병운(朴炳云)·신태윤(申泰潤)·송일길(宋日吉) 등 15명이었다.

현대

1945년 광복과 더불어 남북이 분단되면서 회양군 전역이 38도선 이북지역이 되었고, 6·25 이후 강원도의 일부 지역은 수복되었으나 회양군은 휴전선 북쪽에 위치하였다.

유물ㆍ유적

선사시대의 유적으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사동면 하사동리와 하지석리에 있다. 하사동리의 것은 덮개돌이 가로 1.9m, 세로 2.4m, 두께 0.9m 크기의 네모꼴이며, 하지석리의 것은 덮개돌이 가로 1.5m, 세로 2.7m, 두께 0.75m 크기의 네모꼴이다.

산성지로 난곡면 현리의 현리산성(縣里山城)은 둘레 270m, 높이 1.2m 규모의 타원형 석성이나 대부분 무너져 있고, 난곡면 공동리의 노고성(老姑城)은 둘레 180m, 높이 1.8m 규모의 석성으로 신라시대에 축성되었다고 전하여진다.

내금강면 상현리·순갑리·하북점리의 성치산성(城峙山城)은 둘레 300m, 높이 1.8m 규모의 타원형 석성이고, 이 밖에 북산성(北山城)·고산성(古山城)·의관령고성(義館嶺古城)·천보산고성(天寶山古城)·금강고성(金剛古城) 등과 철령에 성을 쌓아 관문을 만든 철령관(鐵嶺關)이 있었다고 한다.

봉수지로는 하북면 철령리의 철령봉수지에 둘레 45m, 높이 1.8m의 석축을 쌓았던 흔적이 있고, 그 밖에 개탄산(介呑山)·여이파산(餘伊破山)·추지령(楸池嶺)·소산(所山)·남곡북산(嵐谷北山)·장미산(獐尾山) 등의 봉수지가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금강산의 보현암(普賢庵)·도산사(都山寺)·마하연(摩訶衍)·불지암(佛地庵)·송라암(宋羅庵)·보덕굴(普德窟)·장안사(長安寺)·표훈사(表訓寺)·정양사(正陽寺)·헐황루(歇愰樓)·원통사(圓通寺)·삼장사(三藏寺)·지불암(知佛庵)·금장암(金莊庵)·선주암(善住庵)·천친암(天親庵)·수선암(修善庵庵)·개심암(開心庵)·묘덕암(妙德庵)·천덕암(天德庵)·진불암(眞佛庵)·사자암(獅子庵)·묘봉암(妙峰庵) 등이 있으며, 이 밖에 내금강면 상신원리 단발령(斷髮嶺) 동쪽에 절터가 있고, 사동면 상구만리의 절터에는 무너진 석탑이 남아 있다.

사적지로는 회양면에 사직단(社稷壇)과 회양향교·문묘·성황사(城隍祠)가 있고, 회양 북쪽 산성에 의령묘(義嶺廟)가 있다.

금강산이 대부분 회양군에 속해 있으며, 금강산의 절경으로는 장안동(長安洞)·금장곡(金藏谷)·명연담(鳴淵潭)·영원동(靈源洞)·백탑동(百塔洞)·송라동(宋羅洞)·망고대(望高臺)·청련동(靑蓮洞)·천일대(天逸臺)·태상동(太上洞)·만폭동(萬瀑洞)·내팔담(內八潭)·직담(直潭)·수정렴(水晶簾)·청일담(靑日潭)·용곡담(龍曲潭)·수미대(須彌臺)·가가섭동(迦葉洞)·묘길상(妙吉祥)·백운동(百雲洞)·원적동(圓寂洞)·소용추(小龍楸)·비로봉(毘盧峰)·일출봉(日出峰)·향로봉(香爐峰) 등이 있다.

교육ㆍ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하북면 초일리에 회양향교(淮陽鄕校)가 있다. 회양향교의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36년(인조 14)에 부사 조찬한이 중수했고, 1654년(효종 5)에 부사 조경(趙絅)이 다시 중수했으며, 1691년(숙종 17)에 부사 이희채(李熙采)가 서진공후산 기슭으로 이전하였다. 이 밖에도 많은 서당이 각 지역에 있어 교육을 담당하였다.

근대교육기관으로는 1906년에 회양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으며, 각 면에 사립학교가 설립되어 상북면에 경의학교, 난곡면에 창덕학교·봉현리학교, 안풍면에 안풍학교, 사동면에 사동학교, 내금강면에 말휘리학교 등이 있었으나 1922년에 모두 공립학교로 개편되었다.

그 뒤 이들 학교는 심상소학교가 되었으며, 회양면에 회양동심상소학교·회양서심상소학교·신안심상소학교·이동간이학교가 있고, 상북면에 4개교, 하북면에 3개교, 난곡면에 4개교, 안풍면에 3개교, 사동면에 3개교, 내금강면에 4개교 등 분교를 포함해 25개교가 있다.

종교상황은 불교의 경우 장안사가 내금강면에 있고, 이 밖에 표훈사·정양사·보덕굴·봉원사 등 많은 사찰이 있어 번성하였다. 천도교는 포교가 활발해 교도 김천일이 교인이었던 유인경·박병운·신태윤·임병준·공면술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군내에 배포하면서 3·1운동을 주도하였다. 기독교도 1900년대에 들어와 포교가 시작되었으며, 3·1운동 때에는 많은 참여를 하였다.

산업ㆍ교통

산지가 많으며 기후가 냉량한 관계로 벼농사보다 밭농사를 주로 하며, 쌀과 콩·조·옥수수·감자 등이 생산되고, 고원지대에서는 채소재배가 증가하고 있다. 난곡면의 고원대지에는 대규모의 목장이 있어 젖소와 양을 방목하며, 양잠과 양봉도 활발하다.

광업은 금·철·텅스텐 등이 매장되어 있으며, 철은 조선시대부터 생산되었다. 또한 1만3800㎾의 시설용량을 가진 우리 나라 최초의 수력발전소인 금강산수력발전소가 있다.

한편 시장으로는 5일장이 있는데 회양읍 읍내장과 사동면 사동장이 2·7일, 회양읍 신안장과 난곡면 현리장이 3·8일, 상북면 전탄장과 내금강면 말휘리장이 1·6일, 상북면 도납장이 5·10일, 안풍면 화천장과 난곡면 이포장이 4·9일에 각각 열려, 농산물이나 생활필수품 또는 가축의 거래가 활발하다.

교통은 과거 금강산 전기철도가 철원에서 내금강면까지 부설되어 관광객을 수송했으나 창도 북쪽은 폐선되었다. 도로망은 철원∼고성간 국도가 군의 중앙과 동부를 지나며, 여기에양구로 통하는 국도와 안변으로 통하는 국도가 연결되어 있다. 또한, 지방도가 군내 각 면 소재지와 연결되어 있으며, 추지령을 넘어 통천과도 연결된다.

읍ㆍ면

난곡면

군의 남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341.92㎢. 인구 2만300명(1944년 현재). 난곡면(蘭谷面) 면 소재지는 현리이다. 면 전역이 태백산맥 중에 위치해 있으며, 동부에 백아산(白牙山, 933m)·풍대령(風大嶺, 693m), 서부에 백암산(白巖山, 1,110m)·백봉(白峰, 1,095m), 남부에 백역산(白易山, 1,109m)·장자산(莊子山, 802m), 북부에 적목령(赤木嶺, 752m) 등의 높은 산들이 솟아 있고, 그 여맥이 뻗어내려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북한강이 지류인 개동연천(開東淵川)을 합치면서 면의 동부를 남류하며, 유역에는 규모는 작으나 평지가 형성되어 있어 농경지와 거주지로 이용된다. 주 산업은 농업으로 밭농사를 주로 하며, 주요 농산물로는 보리·콩·감자·옥수수·잡곡 등이 경작된다.

개동연천 유역의 고원지대에서는 방목이 행해지며, 광복 전에는 왕실관리의 목장을 두어 우량마(優良馬)를 생산했고, 최신기계를 이용하는 현대적 농장이 있어 우유·양모·육가공품 등을 생산한다. 광업은 금·은·중석 등이 채굴된다.

교통은 회양면∼세포역간 3등도로가 면의 중앙을 동서로 통과하며, 여기에 각 주요 마을로 통하는 등외도로만 연결되어 있어 불편하다. 유적으로는 현리와 공동리에 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석축의 산성지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3개교가 있다. 현(縣)·수천동(水泉洞)·봉통포(蜂桶浦)·천읍(泉邑)·조동(槽洞)·이포(泥浦)·귀락(貴洛)·유읍(楡邑)·추전(楸田)·봉일(鳳逸)·직포(直浦)·오동(梧洞)·동사동(東沙洞)·토동(土洞)·신평(新坪)·공동(公洞)·상송관(上松館)·하송관(下松館)·낭하(浪下) 등 19개 이가 있다.

내금강면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01.42㎢, 인구 2만1824명(1944년 현재). 내금강면(內金剛面) 면 소재지는 말휘리이다. 본래 장양면(長楊面)이었으나 일제 말기에 내금강면으로 개칭되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악지대로 동부 면계에 태백산맥이 남북으로 뻗어내려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1,638m)을 비롯해 옥녀봉(玉女峰)·국사봉 등이 솟아 있으며, 서부 면계에도 구단발령(舊斷髮嶺)·증봉(甑峰, 1,267m) 등이 솟아 있다.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여러 작은 내들이 모여 금강천과 동금강천(東金剛川)이 되어 남류하다가 합쳐 북한강이 된다. 이들 강 유역에는 규모는 작으나 평지가 형성되어 있어 농경지로 이용된다.

주 산업은 농업으로 밭농사를 주로 하며, 주요 농산물로는 콩·조·감자·메밀·팥·잎담배 등이 생산된다. 광업은 장양광산(長楊鑛山)에서 금·은·수연·중석 등이 채굴된다. 교통은 경원선의 철원역에서 분기되는 사철(私鐵) 금강산전철이 단발령을 넘어 내금강의 장안사 부근까지 도달하며, 단발령·말휘리·내금강의 3역이 설치되어 있었다.

교통은 말휘리를 중심으로 3등도로가 십자로 교차하고 각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가 통하고 있어 불편하지 않으며, 태백산맥을 넘는 탐승로(探勝路)도 나 있다. 유적으로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장연리에 장안사, 정양동리에 표훈사가 있다.

장안사에는 대웅보전(大雄寶殿)·사성지전(四聖之殿) 등 국보급 유물이 있으며, 표훈사에도 석등롱(石燈籠)·미타좌상(彌陀坐像)이 남아 있다. 또한 표훈사의 말사인 정양사에는 약사좌상(藥師坐像)·삼층석탑·석등롱, 백화암(白華庵)에는 서산대사비(西山大師碑)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3개교가 있다. 말휘(末輝)·병이무지(竝伊武只)·상신원(上新院)·금강원(金剛院)·정양동(正陽洞)·장연(長淵)·온정동(溫井洞)·하신원(下新院)·상북점(上北占)·상현(上縣)·하북점(下北占)·하현(下縣)·삼덕동(三德洞)·하소곤(下小坤)·하회이(下檜耳耳)·순갑(順甲)·신풍(新豊)·유동(柳洞)·봉현(蓬峴)·상회이(上檜耳)·상소곤(上小坤)·추동(楸洞)·동사동(東沙洞) 등 23개 이가 있다.

사동면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157.13㎢, 인구 9,395명(1944년 현재), 사동면(泗東面) 면 소재지는 하사동리이다. 면의 동부에 증봉, 남부에 구학산(九鶴山, 930m), 북부에 백암산(白庵山, 1,241m) 등이 높이 솟아 있으며, 그 여맥이 면내로 뻗어내려 남서방향으로 경사져 있다.

사동천(泗東川)이 면의 중앙을 남서류해 면경계에서 북한강에 합류하며, 이들 강 유역에는 규모는 작으나 평지가 형성되어 있어 경작지로 이용된다. 주 산업은 농업으로 밭농사를 주로 하며, 주요 농산물로는 보리·콩·조·감자·옥수수 등이 산출되고 북부 계곡에서는 피가 재배된다. 또한 양봉이 활발해 꿀생산이 군내 제일이다.

교통은 하사동리를 중심으로 각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만 통과해 불편하다. 유적으로는 하지석리와 하사동리에 북방식 지석묘가 있으며, 상구만리와 사동리에 이름 모를 사지(寺址)가 있어 사층석탑과 육층석탑이 남아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1개교가 있다.하사동(下泗東)·상구만(上九萬)·상지석(上支石)·하지석(下支石)·금곡(金谷)·회동(淮洞)·상사동(上泗東)·사동(沙洞)·간점방(間占方)·상점방(上占方)·하구만(下九萬)·동사동(東寺洞)·양수암(兩水庵)·만도(晩到)·산월(山月)·능동(菱洞)·이교(泥橋)·쌍계평(雙鷄坪)·신읍(新邑)·마전동(麻田洞)·사기점(沙器店)·광동(廣洞)·하양(下陽)·신흥(新興) 등 24개 이가 있다.

상북면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283.11㎢, 인구 8,121명(1944년 현재). 상북면(上北面) 면 소재지는 목곡리이다. 본래 상초북면(上初北面)으로 1938년에 상북면으로 개칭하였다. 면의 동부에 우동산, 서부에 수암봉(秀巖峰, 831m), 남부에 철마령(鐵馬嶺, 1,047m), 북부에 망마암산(望馬巖山, 1,091m)·장사봉(將師峰, 971m) 등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으며, 그 여맥이 면내로 뻗어내려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 산지에서 발원한 작은 내들이 북한강 상류가 되어 남류하며, 유역에는 좁은 평지가 형성되어 있어 경작지와 거주지로 이용된다. 주 산업은 농업으로 밭농사를 주로 하며, 주요 농산물로는 보리·콩·조·대마·감자 등이 경작되고, 약초재배·양봉·마직(麻織)도 행하여진다.

교통은 상전탄리를 중심으로 각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만 통과해 불편하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3개교가 있다. 목곡(木谷)·상전탄(上田灘)·두허동(斗虛洞)·하진평(下津坪)·신명(新明)··용연(龍淵)·송포(松浦)·모덕(慕德)·하전탄(下田灘)·오랑(五郎)·중중신정(中新正)·도납(道納)·판기(板機)·상신정(上新正) 등 14개 이가 있다.

안풍면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251.22㎢, 인구 8,706명(1944년 현재). 안풍면(安豊面) 면 소재지는 신창리이다. 동부에는 응산(鷹山, 1,231m), 북서부에는 철마령, 남부에는 백암산(白庵山), 북부에는 고윤산(古尹山, 1,225m) 등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으며, 그 여맥이 면 전역에 미쳐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북한강 상류가 사방 계곡에서 흘러내려 오는 작은 내들을 합치면서 흐르고, 유역에는 규모는 작으나 평지가 형성되어 있어 농경지와 거주지로 이용된다. 주 산업은 농업으로 밭농사를 주로 하며, 주요 농산물로는 콩·보리·감자·잡곡 등이 산출되고, 양봉·약초재배도 행하여진다.

광업은 안풍광산에서 금·은이 채굴된다. 교통은 화천리를 중심으로 남서쪽으로 회양과 금성, 북쪽으로 통천과 2등도로가 통하며, 각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가 통하고 있어 불편하지 않다. 특히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 방면으로 6개의 비교적 넓은 도로가 개통되었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2개교가 있다. 신창(新昌)·흥인동(興仁洞)·가동(佳洞)·본(本)·화산(花山)·방목((方目)·명우(鳴牛)·안미(安美)·추동(楸洞)·용암(龍巖)·판유(板踰)·백후(栢后)·판맥(判陌)·중세동(中細洞)·상세동(上細洞)·풍미(豊美)··성동(城洞)·화천(化川)·장치동(長峙洞) 등 19개 이가 있다.

하북면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195.34㎢, 인구 8,422명(1944년 현재). 하북면(下北面) 면 소재지는 지탄리이다. 본래 하초북면(下初北面)으로 1938년에 하북면으로 개칭되었다. 면의 동부에 수암봉, 서부에 연대봉(淵臺峰, 1,207m), 남부에 풍대령, 북부에 풍류산·철령(685m) 등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으며, 그 여맥이 면 전역에 미쳐 산지가 많다.

북한강 지류가 중앙을 남류하며, 유역에 규모는 작으나 평지가 형성되어 있어 농경지로 이용된다. 주 산업은 농업으로 밭농사를 주로 하며, 주요 농산물로는 보리·콩·조·피·메밀 등이 생산되고, 양봉·약초재배도 행하여진다.

광업은 철령 남쪽에 철령광산이 있어 금·은 등이 채굴되며, 부근의 하천에서는 사금이 채취된다. 교통은 회양∼원산간 1등도로가 면의 중앙을 동북으로 통과하며, 각 주요 마을로 통하는 등외도로가 연결되어 있어 편리하다. 철령은 예로부터 남북교통의 요지로 관문(關門)이 있었으며, 고려 말 철령위(鐵嶺衛) 문제도 이 곳을 목적지로 하였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2개교가 있다. 지탄(只呑)·상평(上坪)·초일(初一)·초남(初南)·마산(麻山)·은계계(銀溪)·문내동(文內洞)·선암(仙巖)·태일(台日)·금곡(金谷)·철령(鐵嶺))·하정신(下正新) 등 12개 이가 있다.

회양면

군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169.68㎢, 인구 1만4174명(1944년 현재). 회양면(淮陽面) 면 소재지는 읍내리이다. 본래 구 회양군 부내면(府內面)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동면(二東面)을 병합하고 새로 개편된 회양군에 편입되었으며, 1938년에 회양면으로 개칭되었다.

면의 동부에 병풍산(屛風山, 927m), 남부에 백아산·촉조봉(蜀鳥峰, 661m), 북부에 철마령 등이 솟아 있고, 중앙에도 마룡산(馬龍山, 891m)이 가로놓여 있으며, 산세는 남서쪽으로 점차 완경사가 되어 남서부에는 규모는 작으나 평지가 형성되어 있어 경작지로 이용된다.

북한강의 지류가 남류해 서부 면계를 흐르는 북한강에 합류하며, 그 유역과 중부의 신안(新安)벌에는 평지가 형성되어 있고, 비교적 토지가 비옥해 농경지로 이용된다. 주 산업은 농업으로 밭농사를 주로 하며, 주요 농산물로는 쌀·콩·조·메밀·대마·옥수수 등이 생산되며, 양봉과 마직도 행하여진다.

교통은 원산과 김화·고성 방면으로 1등도로가 통하며, 통천과 2등도로, 세포와 3등도로가 통하고, 각 주요 마을에 등외도로가 나 있어 편리한 편이다. 교육기관으로는 국민학교 3개교가 있다.

읍내(邑內)·상만(上萬)·대유(大有)·소풍(素豊)·강돈(江敦)·아현(峨峴)·하교동(下橋洞)·상교동(上橋洞)·금태일(金台日)·광석(廣石)·전항(箭項)·장벽동(長碧洞)·마룡(馬龍)·두전동(豆田洞)·고대(高垈)·갈화(葛花)·봉현(蓬峴)·하토기점(下土器店)·외강돈(外江敦)·지석(支石)·추방(秋芳)·신안상(新安上)·신안중(新安中)·오동(梧洞)·이동(二東)·간동동(間洞)·관(館)·고재(高才)·노동(盧洞)·부로지(扶老只)·심포(深浦)·송치(松峙)·연포송(延浦送)·곡돌(曲乭)·포촌(浦村) 등 37개 이가 있다.

광복 후의 변천

강원도(북한) 중앙부에 있는 군. 동쪽은 금강군·통천군, 서쪽은 세포군, 남쪽은 김화군·창도군, 북쪽은 안변군·고산군과 접해 있다. 동경 127°25'∼127°49', 북위 38°34'∼38°55'에 위치하며, 면적 640㎢, 인구 11만여 명(1996년 추정)이다.

1952년 12월 행정구역 개편시 내금강면 전체와 안풍면·사동면 일부가 분리되어 금강군에, 사동면 일부는 창도군에, 난곡면 일부는 세포군에 이관되었고, 회양면·상북면·하북면의 전부와 사동면·난곡면·안풍면의 일부, 김화군 창도면의 일부로 군 행정구역이 개편되었다. 1954년 10월 용포리의 일부가 소풍리에 편입되었고, 1958년 6월 유읍리·귀락리·오봉리가 세포군으로 이관되었다. 1967년 10월에는 용포리의 일부가 강돈리에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은 회양읍과소풍(素豊)·하교(下橋)·강돈(江敦)·전항(箭項)·광전(廣田)·교주((橋周)·신동(新洞)·신안(新安)·구룡(九龍)·송포(松浦)·추전(楸田)·포천(浦泉)·봉포(蜂浦)·선대(仙臺)·금곡(金谷)·금철(金鐵)·신신계(新溪)·마전(麻田)·용포(龍浦)·전곡(田谷)·오랑(五郞)·기정(機正)·도납(道納)·신명(新明)·명우(鳴牛) 등 25개 이로 되어 있다. 군 소재지는 회양읍이다.

자연환경

이 군은 영서북부 고원지대에 속해 대부분이 산지로 되어 있으며, 동쪽에는 태백산맥이, 북서쪽에는 광주산맥이 뻗어 있고, 그 사이에 깊고 험한 계곡과 크고 작은 분지가 있다.

주변 경계지역에는기대봉(1,056m)·망미바위산(1,091m)·우동산(1,082m)·철마산(1,047m)·오봉산(953m)·청학산(1,183m)·풍류산((1,042m)·연대봉(1,090m) 등 높은 산들이 솟아 있으며, 군 내부에도 장수봉(1,052m)·장지산(1,005m)·성로산(879m)·백이산(933m)·황산(1,060m) 등이 있다.

하천은 북한강과 그 지류들인 마전천·개동연천·신안천·사도보천 등이 군의 중심부를 남북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관개용수·수력발전용수로서 이용되고 있다. 군내에는 봉덕저수지·신안저수지·노동저수지·금강저수지 등이 있으며, 금강저수지는 금강발전소의 발전용수로 이용되고 있다.

주요 기반암은 편암·석회암·현무암·화강암이며, 납·아연·유화철·금·은·동 등이 매장되어 있다. 주요 토양은 갈색산림토와 충적토, 논토양이다.

기후는 연평균기온 7.9℃, 1월 평균기온 -8.8℃, 8월 평균기온 22.5℃이며, 연평균강수량은 1,241㎜이다. 첫 서리는 10월 초순, 마감서리는 5월 중순에 내린다. 산림은 군 면적의 90%를 차지한다. 주요 수종은 소나무와 참나무이고, 이깔나무·분비나무·가문비나무·피나무·밤나무·아카시아나무도 퍼져 있다.

산업·교통

산지가 많은 비중을 차지해 경작면적 비율이 낮은 편이다. 농경지는 군 넓이의 18%이며, 그 중 논이 20%, 밭이 70%, 과수밭이 4%를 차지한다. 주요 작물은 옥수수·쌀·콩·밀 등이고, 감자도 많이 심는다. 배추와 무를 재배해 채소생산을 늘리고 있으며, 공예작물인 담배·박하·들깨도 생산되고 있다.

야산지대에는 과일밭이 조성되어 배·사과·복숭아·살구·추리·대추 등이 생산되고 있다. 산간초지를 이용해 소·양·토끼 등의 초식가축을 위주로 돼지와 닭도 많이 사육되고 있으며, 양잠은 도에서 세 번째 가는 누에고치 생산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또 풍부한 자연밀원에 의해 벌꿀도 많이 생산되고 있다. 명우리에는 금강저수지를 수원으로 하는 금강산발전소 제1호발전소가 있으며, 군내에는 식료품과 생활필수품을 생산하는 장공장·식료공장·가구공장·일용품공장·직조공장·지물공장 등 지방산업 공장들이 있다.

교통은 고산∼김화, 고산∼금강, 고산∼창도를 연결하는 도로가 지나고 있다.

경승지로는 비소암과 솥 모양의 취병대가 알려져 있으며 금곡리에는 금곡약수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회양고등중학교와 포천고등중학교가 있다.

참고문헌

「世宗實錄地理志」(, 『平安南道誌』, 1978)
「新增東國輿地勝覽」(, 1973)
「淮陽郡邑誌」(, 1968)
「江原總覽」(江原道, 1970)
「人物의 고향-北韓篇-」(中央日報社, 1967)
「북한지지요람」(통일원)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길용현·최복규·노도양·김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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