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금선사 신중도 (서울 )

회화
유물
문화재
서울특별시 종로구 금선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말기의 산신도.
정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금선사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말기의 산신도.
개설

2002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30㎝, 가로 82.7㎝. 현재 금선사 대적광전 내에 봉안되어 있으며 액자로 표구되어 있다. 금선사 신중도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들을 그린 그림으로, 화면 아래쪽의 화기(畵記)를 통해 1887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내용

불교의 호법신들을 그린 신중도는 조선 후기부터 그 수가 크게 증가하여 전체 불화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며 다양한 유형으로 발전하였다. 금선사 신중도는 제석천(帝釋天)과 위태천(韋駄天)을 중심으로 한 제석천룡도(帝釋天龍圖) 유형에 속한다. 세로로 긴 화면 위쪽에는 제석천을 포함한 천부(天部)의 무리들을 배치하였고, 그 아래쪽에는 위태천과 그 권속들을 그렸다. 전체적으로 권속을 조금씩 생략해 간략한 구성을 보인다.

제석천은 정면을 바라보며 두 손으로 연꽃 가지를 받쳐 들고 있고 그 주위에는 홀을 들고 있는 일월천자(日月天子)와 공양물을 들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4위의 천동 · 천녀가 있다. 그 아래 무장형의 위태천은 특유의 새 날개깃 투구를 쓴 채 화면 왼쪽을 향해 합장을 하고 있으며, 그 주위로 흰 턱수염과 눈썹이 특징적인 용왕(龍王)을 포함해 6위의 권속들이 자리하고 있다. 위태천은 천룡팔부중(天龍八部衆)과 함께 그려지면서 그 중심이 되었는데, 금선사 신중도에서는 권속 중 일부를 생략하고 흰 부채를 들고 휘날리는 넓은 소매 옷을 입은 노인형의 산신(山神)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19세기 이후 신중도에 위태천의 권속으로 천룡팔부 외에 민족 고유의 토착신앙의 영향을 받아 산신이나 부엌신인 조왕신(竈王神) 등을 포함하여 그리는 형식이 유행하였다. 존상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는 구도이고 전체적으로 붉은색을 주조색으로 하고 있으며 청색을 눈에 띄게 사용하였다.

신중은 본래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의 역할을 하였지만 금선사 신중도가 제작되었던 조선 말기에는 그와 더불어 불자들에게 복을 내려주고 재앙을 소멸해 주는 역할까지 담당함으로써 대중들의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호응은 신중도가 활발하게 제작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금선사 신중도는 제석천과 위태천을 중심으로 하는 제석천룡도 유형으로, 토착신앙의 영향을 받아 위태천의 권속으로 산신을 그리는 시기적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참고문헌

『신중 불교의 수호신들』(국립중앙박물관, 2013)
「조선후기 신중탱화 도상의 연구」(이승희, 『미술사학연구』228·229, 한국미술사학회, 2001)
「조선시대 신중탱화의 연구Ⅱ」(김정희, 『한국의 불화』5, 성보문화재연구원, 1998)
「조선시대 신중탱화의 연구Ⅰ」(김정희, 『한국의 불화』4, 성보문화재연구원, 1997)
집필자
최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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