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군(昌寧郡)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郭再祐)가 이끄는 의병들이 남강과 낙동강의 왜군 수송로를 공격하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웠고, 그 해 8월에는 의병장 성천희(成天禧)가 창녕을 탈환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도 이 지방의 의병들이 산성을 수축하고 화왕산성(火旺山城)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 1631년(인조 9)에 성지도(成至道)의 역모사건으로 창녕현이 폐현되어 영산현에 합쳐졌다가, 1637년에 다시 복구되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1759년(영조 35)의 호구수는 창녕현이 6,192호 2만 8163명, 영산현이 4,264호 1만 9848명이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대구부에 속하여 창녕현과 영산현이 모두 군으로 개편되었으며, 1896년에 경상남도 창녕군·영산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영산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