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수(趙彦秀)
1549년 함경도관찰사, 1551년 한성부좌윤, 이후 강원도관찰사·한성부우윤, 예조와 이조의 참판을 역임하고, 1559년 한성부판윤, 이듬해 형조판서, 1561년 동지중추부사·우참찬, 1566년 공조판서를 역임하였으며, 이듬해 지중추부사로 치사(致仕)하였다. 삼조(三朝)에 역사(歷仕)하기 40년에 물려받은 집 한칸을 겨우 지켰고, 죽은 뒤에는 상을 치를 돈이 없어 부의로 겨우 염습하였을 정도로 청백하였다 한다. 서경덕(徐敬德)과는 동년진사(同年進士)로, 조언수의 경학(經學)을 매우 높이 여겨 함께 진사가 된 것을 늘 자랑으로 생각하였다. 또, 중국에 사신으로 갔을 때에는 조언수의 덕스러운 용모를 흠모하여 예부상서(禮部尙書)가 사사로이 초치하여 『사서구결(四書口訣)』을 선물로 주기도 하였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