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

대동여지도 중 경상북도 경주, 울산, 울주 부분
대동여지도 중 경상북도 경주, 울산, 울주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경상북도 남동단에 위치한 시.
이칭
이칭
서라벌, 월성
정의
경상북도 남동단에 위치한 시.
개관

동쪽은 동해, 서쪽은 청도군과 영천시, 남쪽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북쪽은 포항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8°58′∼ 129°31′, 북위 35°39′∼ 36°04′에 위치한다. 면적은 1,324.41㎢이고, 인구는 25만 9773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4개 읍, 8개 면, 11개 행정동(44개 법정동), 305개 행정리(142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에 있다.

자연환경

태백산맥의 남단으로 경상계(慶尙系)의 화강암이 관입한 지질을 이룬다. 지형은 주사산맥(朱砂山脈) · 금오산맥(金鰲山脈) · 동대산맥(東大山脈) 등 세 줄기 태백산맥의 지맥이 서부 · 중부 · 동부를 각각 남북으로 주행하여 산지지형을 이루고 있다.

주요 산으로는 도덕산(道德山, 703m) · 구미산(龜尾山, 594m) · 금오산(金鰲山, 466m) · 황룡산(黃龍山, 664m) · 토함산(吐含山, 745m)과 주사산(朱砂山, 622m) · 소두방산(315m) · 천룡산(天龍山, 495m) 등이 있다.

고개로는 추령(楸嶺, 309m)과 치술령(765m) 등이 있다. 형산강구조곡(兄山江構造谷), 영천∼경주간 구조곡이 교차하는 지점에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침식분지가 형성되어 그 곳에 경주 시가지가 발달하였다.

명활산(明活山, 245m) · 금오산(金鰲山) · 옥녀봉(玉女峰, 215m) · 선도산(仙挑山, 381m) · 소금강산(小金剛山, 143m) 등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는 자연요새를 이루고 있다. 또한, 경주∼양산간 구조곡도 경주 도심지에서 교차하여 거의 시 전역이 형산강의 상류 · 중류부에 해당된다.

산내면에서 발원하는 동창천이 청도군 청도읍 내호리에서 청도천과 합류, 밀양강으로 흘러들며, 외동읍 괘릉리에서 발원하는 동천이 울산에서 태화강으로 흘러든다.

울산광역시 울주군에서 발원하는 미역내가 북류하면서 크고 작은 하천과 합해져 기린내[麟川]가 되고, 반월성을 싸고 도는 남천(南川)은, 시가지 중심부를 관통하는 북천(北川)과 현곡천(見谷川) · 대천(大川) 등과 합류해 형산강을 이루어 북류하다 안강평야에서 칠평천(七坪川) · 기계천(杞溪川)과 합류하여 동해로 흐른다.

기후는 기온교차가 비교적 심한 내륙성기후를 나타내고 있다. 연평균기온 14.0℃, 1월 평균기온 -0.9℃, 8월 평균기온 24.6℃이며, 연강수량은 1,037.0㎜이다.

역사

이 지역에서 사람이 살게 된 것은 청동기시대라고 생각되는데, 이는 이 시기 이전에 해당하는 유물 · 유적이 발견된 바 없고, 고인돌 · 청동검 · 간돌칼 등을 부장한 무덤 등 청동기 유물 · 유적이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기 때문이다.

곧 구정동, 평동 입실리 유적 등은 우리나라 후기 청동기문화를 밝혀주는 귀중한 유적이며, 조양동 유적은 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것으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들 유적은 이 지역이 일찍부터 문화의 중심지였음을 반영하는 것이며, 이와 같이 발달된 문화를 토대로 하여 신라가 성립될 수 있었다.

신라는 원래 사로 6촌에서 비롯되었는데, 사로 6촌의 위치를 경주평야 일대에만 한정하여 보는 견해도 있으나, 경주지역을 포괄하는 것으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사로 6촌은 기원 전후 무렵 사로국(斯盧國)으로 발전하였으며, 점차 진한 12국의 맹주국(盟州國)이 되었고, 6촌도 6부로 개편되었다.

그 뒤 사로국이 주변지역에 대한 정복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면서 그 영역이 확대되자 6부가 두어져 있던 이들 지역은 왕경으로 되었다. 곧 궁실과 각종 관청이 들어서고 지배층이 거주하는 도시로 발전하였으며, 6부의 아래에 방리제(坊里制)가 시행되었다.

통일 이후의 전성시대에는 17만 8,936호의 인구가 거주하는 대도시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각종 유적에서 그 대략을 짐작할 수 있으나, 신라의 쇠퇴로 왕도로서의 영화는 사라지게 되었다.

935년(태조 18) 신라가 고려에 항복하자 이 지역은 경순왕의 식읍이 되었고, 940년 군현 개편에 따라 6부의 명칭도 바뀌게 되었다. 이 때 이곳에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가 두어져 6부지역을 위시한 인근의 여러 지역이 합속되었다.

995년(성종 14) 동경유수관(東京留守官)으로 개편되었으나, 1012년(현종 3)동경유수관이 폐지되고 경주방어사로 강등되었다가 1014년 다시 안동대도호부로, 1018년경주대도호부로 개편되었으며, 1030년 다시 동경유수관이 되었다.

이러한 개편 과정에서도 여러 군현을 영속한 큰 읍으로서의 면모를 유지했으며, 12세기 후반 무인정권하에서는 신라부흥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1202년(신종 5) 동경야별초의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는데, 이러한 일련의 사태로 1204년에는 지경주사(知慶州事)로 읍격이 강등되었으나, 1219년(고종 6) 유수관으로 복귀되었다. 1238년에는 몽고군이 이 지역을 휩쓸어 황룡사구층목탑이 불타는 등 수많은 문화재의 손실을 입었고, 1308년(충렬왕 34) 계림부로 고쳐졌다.

조선 개국 후 8도체제가 확정되면서 이곳에 경상도의 감영이 두어졌으나 1408년(태종 8) 무렵 감영이 상주목으로 옮겨졌고, 1415년에 경주부로 개칭되었다. 이 후에도 안강(安康) · 기계(杞溪) 등 4현을 속현으로 거느린 영남의 큰 읍으로서의 면모를 유지하였다.

1519년(중종 14) 일시 경상도가 좌 · 우도로 나뉘어지자 좌도의 치소가 되어 좌도감사가 경주부윤을 겸하게 되었다. 이 지역은 건국이래 학문이 번성한 지역으로서, 1561년(명종 16) 서악서원(西嶽書院), 1572년(선조 5) 옥산서원(玉山書院) 등 많은 원사(院祠)가 건립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의 진격로에 해당하는 이 지역은 치열한 격전지가 되었고, 박진(朴晉) · 박의장(朴毅長) · 권응수(權應銖) 등이 이끈 관민(官民) 연합군의 경주성전투와 그 탈환 작전은 왜란을 승리로 이끈 계기가 되었다.

또 이 지역은 조선 후기에 동성 마을이 많이 형성되었는데, 양동의 이씨(李氏)와 손씨(孫氏)는 오늘날까지 그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 말기에는 이곳 출신 최제우(崔濟愚)가 인내천(人乃天)의 동학사상을 창시하여 민중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기도 하였다.

1895년 지방제도 개혁 시에 경주군으로 개편되었고, 1931년 읍면제의 실시에 따라 경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이어서 1937년에는 양북면(현 문무대왕면)의 일부가 감포읍으로 분리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이 지역 역시 활발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는데, 3 · 1운동시에 3월 13일과 15일 만세시위가 일어났고, 1928년 신간회 경주지부가 결성되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9년 안강읍의 승격에 이어 1955년 경주시의 승격으로 시군이 분리되어 월성군이 따로 존재하게 되었다. 1973년 건천읍, 1980년 외동읍의 승격이 있었고, 1989년 월성군이 경주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995년 도농통합에 따라 경주시와 경주군이 통합되어 새로운 경주시가 되었다. 1998년 행정동 통폐합이 이루어져 4읍 8면 13동이 되었다가 다시 2009년 1월 행정동이 통폐합되어 4읍 8면 11동으로 되었다.

유물 · 유적

이 시는 선사시대부터 많은 유적을 남기고 있다. 특히, 신라 천 년의 도읍지로서 수많은 유물 · 유적을 간직하고 있어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물 · 유적이 밀집되어 있다. 국가지정 문화재만도 국보 31점(불국사삼층석탑 일괄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73점, 사적 및 명승 77개소, 천연기념물 3종, 중요민속자료 16종, 중요무형문화재 2종이 있다.

경주시 일원의 유물 · 유적은 크게 고분 및 그 유물, 불교관계 문화재, 성 및 궁궐지, 고건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경주시내 이외에도 천북면 모아리 · 오야리, 외동읍 죽동리에서 무문토기가 출토된 바 있고, 고인돌 또한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특히, 강동면과 천북면 모아리 등지에 무리를 이루고 있다.

삼한시대의 유적으로는 외동읍 죽동리, 강동면 안계리, 외동읍 입실리에서 출토된 청동기 일괄유물과 조양동 토광묘군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 이후의 신라분묘유적으로는 경주시내에 자리하고 있는 노서동 · 노동동 · 황남동 · 황오동 · 인왕동 고분군을 비롯하여, 서악의 무열왕릉을 비롯한 고분들과 인접한 충효동 고분군 · 김유신묘 등이 시내 서쪽에 있다.

또 낭산 산록에 선덕왕릉 · 신문왕릉 · 효공왕릉 · 신무왕릉이, 남산 기슭에는 헌강왕릉 · 정강왕릉 · 경명왕릉 · 경애왕릉 등이 분포한다. 이 밖에도 금강산 서쪽의 고분군 및 남산주변 고분군 등 곳곳에 많은 고분이 있다. 이러한 고분가운데, 금관총 · 서봉총 · 천마총과 98호 남 · 북분 등에서 발굴된 각종 유물은 신라문화의 찬연함을 보여주는 유물이 된다.

불교문화재로는 불국사 · 석굴암을 비롯하여 남산일대의 유적을 들 수 있다. 남산은 그 자체가 거대한 노천박물관이라 일컬을 만큼, 미륵곡 · 불곡 · 탑곡 등의 골짜기마다 사찰지 · 불상 · 탑 등이 산재한다. 또 황룡사지 · 사천왕사지 · 망덕사지 · 고선사지 · 흥륜사지 · 굴불사지 · 천군리사지 등을 통해서는 신라 불교사찰의 모습을 확인하게 하였다. 또한 현곡면에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국보, 1962년 지정), 안강읍 옥산리에 경주 감은사지 동 · 서 삼층석탑(국보, 1962년 지정), 문무대왕면 용당리에 감은사지삼층석탑(국보, 1962년 지정), 건천읍 송선리에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국보, 1979년 지정) 등이 있다.

그리고 내남면 용장리에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 경주 남산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보물, 1963년 지정), 문무대왕면 호암리에 경주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보물, 1965년 지정), 안동리에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보물, 1974년 지정), 율동에 경주 율동 마애여래삼존입상(보물, 1963년 지정)이 있다.

또한 배동에 경주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보물, 1963년 지정), 문무대왕면 용당리에 경주감은사지(사적, 1963년 지정), 감포읍 대본리에 이견대(사적, 1967년 지정), 문무대왕면에 경주 장항리 사지(사적, 1963년 지정), 외동읍 모화리에 경주 원원사지(사적, 1963년 지정), 진현동에 석굴암 석굴(국보, 1962년 지정) 등이 있다.

성지 및 궁궐지로는 반월성 · 동궁 · 명활산성 · 남산성, 건천읍 송선리의 경주 부산성(사적, 1963년 지정)과 외동읍 모화리의 관문성(사적, 1963년 지정)이 대표적이다.

고건축물로는 안강읍 옥산리에 옥산서원(사적, 1967년 지정), 강동면 양동리에 무첨당(보물, 1964년 지정)과 향단(보물, 1964년 지정) · 관가정(보물, 1966년 지정), 옥산리에 독락당(보물, 1964년 지정), 강동면 양동리에 경주 양동마을 송첨종택(국가민속문화재, 1970년 지정)이 있다.

그리고 1979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경주 양동마을 낙선당 고택 · 경주 양동마을 사호당 고택 · 경주 양동마을 상춘헌 고택 · 경주 양동마을 근암고택이 있다.

또한 1979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경주 양동마을 두곡고택 · 경주 양동마을 수졸당 고택 · 경주 양동마을 이향정 고택 · 경주 양동마을 수운정 · 경주 양동마을 심수정 · 경주 양동마을 안락정 · 경주 양동마을 강학당 등이 있다.

중요 전적(典籍)으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정사(正史)인 『삼국사기』(국보, 2018년 지정)의 목판본과 『해동명적』(보물, 1970년 지정) · 여주이씨 옥산문중 전적 - 사마방목(보물, 1970년 지정) · 이언적 수고본 일괄(보물, 1975년 지정)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현곡면 오류리에 등나무(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 안강읍 옥산리에 동락당의 조각자나무(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 육통리에 월성 안강읍의 회화나무(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 등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로는 향토술담기(중요무형문화재, 1987년 지정), 누비장(중요무형문화제, 1996년 지정)이 있다.

이 밖에도 신라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으로 계림 · 첨성대 · 포석정 · 나정 · 재매정 · 동방와요지군 · 반월성내의 석빙고 · 경주읍성 등이 있다.

교육 · 문화

신라의 고도인 경주의 전 근대적 교육기구는 신라의 화랑도와 682년(신문왕 2)에 설치된 국학이 있었다. 국학은 고려시대 경주향교의 바탕이 되었으며, 이것은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교동에 있는 경주향교는 1492년(성종 23)에 중수되었으나, 임진왜란 중에 소실되었다. 그 뒤 이시발이 중건하여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주에는 향교 외에도 조선시대에 소학당이 있어 동몽을 훈회하였다. 서원으로는 1561년(명종 16) 서악동에 설립되고 1623년에 사액된 서악서원(西岳書院), 1573년(선조 6) 안강읍 옥산리에 설립되고 1574년(선조 7)에 사액된 옥산서원(玉山書院), 1700년(숙종 26)에 설립하고 1711년 사액된 숭열사가 있다.

이 외에도 구강서원은 1692(숙종 18)에 안강읍 양월리에, 동강서원은 1707에 강동면 유금리에, 인산서원은 1714, 매월당영당은 1670(현종 11), 운곡서원은 1785년(정조 9) 강동면 왕신리에 각각 건립되었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모두 훼철되었지만 서악서원과 옥산서원은 훼철되지 않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근대 교육기관인 초등학교로는 1907년에 유림들이 세운 월성학교(월성초등학교의 전신) · 계림공립보통학교(계림초등학교의 전신) · 옥산공립보통학교(옥산초등학교의 전신)가, 1909년에 광흥학교가 설립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1920년에 세워진 건천공립보통학교 외에 25개의 학교가, 중학교는 1938년에 사립학교인 경주중 · 고등학교가 세워졌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3개교, 중학교 20개교, 고등학교 21개교, 특수학교 1개교가 있으며,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 신경주대학교 · 위덕대학교가 있다.

문화면으로는 도서관 6개소, 박물관 4개소(국립경주박물관, 동국대 · 경주대 · 위덕대 박물관 ), 문화재 300점, 예술단 5개(교향악단 1, 국악단 1, 합창단 1, 소년 · 소녀 합창단 1, 연극단 1), 문화공간으로는 공연시설 7개소, 전시시설 1개소, 지역문화복지시설 4개소, 그리고 문화원이 하나 있다.

문화행사로는 문화박람회인 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3년마다(8∼11월) 보문단지내 엑스포공원에서 개최되고 있다. 1962년부터 시작된 신라문화제는 매년 10월에 개최로 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열리는 해는 연계 개최하기로 하였으며, 전국국악대전, 신라미술대전, 한글백일장, 화랑씨름대회 등의 행사가 펼쳐진다. 이밖에도 청마백일장, 목월백일장, 원효예술제, 만파식적제, 동학예술제 등이 열리고 있다. 특히,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에서는 ‘신라문화학술회의’ 개최와 전문학술지인 ‘신라문화’를 간행하여 신라의 역사 · 문화를 재조명하고 있다.

이 지역은 동학의 발생지이며 교조 최제우가 활동한 곳이며 유네스코가 세계 10대 문화유적도시로 지정한 곳이다.

민속

이 고장에 전해져 내려오는 민속놀이로는 양동마을의 줄다리기와 호미씻이, 세시에 따라 행해지는 널뛰기 · 윷놀이 · 연날리기 · 사자놀이 · 풀놀이 · 활쏘기 · 탑놀이 · 그네뛰기 · 가배놀이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양동마을의 줄다리기와 호미씻이는 이 고장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 알려져 있다.

줄다리기는 정월 보름과 8월 보름경에 주로 행해졌는데, 요즈음은 격년제 또는 3년마다 한 번씩 행해지고 있다. 시합은 윗마을과 아랫마을 간에 이루어지는데, 시합 전에 각각 고사를 지내고 해가 넘어갈 무렵에 시작해서 이튿날 새벽까지 한다. 시합 중에 힘이 달리면 이웃마을에 가서 청병을 하기도 하며, 구경하던 사람들까지도 가세해서 협동심을 발휘한다.

줄다리기는 윗마을이 이기면 풍년이 들고 아랫마을이 이기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이와같은 믿음은 주민들에게 기대감을 부여해주고 있으며 물질과 정신의 대비를 나타내주고 있다.

호미씻이는 삼복이 지나고 세 벌 논을 다 맨 뒤 마을의 머슴들에게 놀 기회를 주는 행사이다. 여름 동안 가장 열심히 일한 머슴이 소를 타고 주인집에 들어가면 주인은 술과 음식을 대접한다. 이 날은 머슴들이 농악대를 이끌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지신을 밟아주며 한해의 수고를 서로 위로하고 격려함으로써 주인과 머슴이 일체감을 가진다.

양동마을과 같이 유교색이 짙은 마을에서는 동제를 지내지 않으나 군내의 많은 동네에서 아직까지 동제를 지내고 있다. 대개 골맥이라는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데, 마을 입구의 고목이나 서낭당이 신체가 된다. 제는 마을에 따라 특별한 날을 정하고 매년 같은 날에 지내기도 하며, 매년 주민이 모여 날짜를 결정하기도 한다.

제일이 결정되면 부정이 없고 출산 · 초상 등을 당하지 않은 남자를 제관으로 선정한다. 제관은 금줄로써 신성구역을 표시하고 정성을 다해 동제를 지내게 되는데, 다음 동제까지 마을에 재앙이 생기면 제관이 제를 잘못 지냈기 때문이라 믿어 지탄을 받게 된다. 제의 비용은 대개 동민들이 분담하며, 제물은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제를 지낸 뒤 음복을 한다.

해안지방에는 용왕을 모시는 별신제를 행하는 곳이 많다. 동제가 근엄하고 정적인 데 비해 별신제는 무당을 초청하여 굿을 함으로써 축제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네행사로서 별신굿이 열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해난사고로 인한 수중고혼을 위로하기 위해 개인이 별신제를 지내는 경우도 있다. 내륙지방에서 동제를 지내는 것과 해안지방에서 별신제를 지내는 것은 주민의 생업과 연관되어서 의례활동이 이루어짐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하겠다.

민요 · 설화

이 고장은 민요가 다양하고도 풍부하게 전승되어온 곳이다. 남성들이 부르는 노래는 「망깨소리」 · 「지신밟기」 · 「보리타작노래」 · 「모노래」 등 주로 노동요이며, 여성들이 부르는 노래는 「치마노래」 · 「부채노래」 · 「바늘노래」 · 「시리굿노래」 · 「방아타령」 · 「댕기노래」 · 「베틀노래」 · 「시집살이노래」 · 「달노래」 등 여자들이 의생활과 관련성을 지닌 노래들이 대부분이다.

「지신밟기」 · 「모노래」 · 「각설이타령」 등은 남녀 구분없이 부른다. 외동읍의 「모내기노래」는 벌모를 심을 때 남성들이 부르는 교환창이지만 줄모를 심는 오늘날에도 흥이 나면 노인층에서 흥얼거리기도 한다.

“물기야 허정청 흐러놓고 쥔내야 양반은 어데로 갔노, 문어야 대전복 손에 들고 첩이야 방으로 놀러갔네, 첩이야 방은 꽃방이요, 님의 방은 연못이라, 꽃과 나비는 봄한철이고 물과 고기는 사시 장천……”

이러한 사설은 여러 면에서 유사하며 가락도 비슷하나 안강읍 부근에서는 사설이 전혀 다르다. “모다야 들어내재이 이모판으로 들어내자 새별겉으나 저밥골이 반달겉이도 떠나온다 니가무시나 반달이냥 초승월색이 반달이지…….”

「보리타작노래」는 이 군 일대에서 거의 비슷하다. 현곡면에서는 목도리깨꾼이 앞소리를 메기며 때릴 곳을 지시하면 종도리깨꾼이 뒷소리 여음을 재창하며 보리를 두드린다. “호호 호해야 여기봐라 호해야 호호 호해야 이보리를 뚜두려서 호호 호해야 곡간에다 채울라네 호호 호해야 개구리보리 때레라 호호 호해야…….”

특히 이 군에는 「달노래」라 하여 종래에 부인들 사이에 흔히 불리던 이른바 「월령가」가 있다. “정월가만 십오일에 망월하시는 소년들아 망월돋아 좋건마느 부모봉양은 뉘가할꼬 그달그믐은 다지내고 이월가면 한식이예 괴지촌에 넋이로다……그달그믐은 다지내고 사월가면 초파일에 앞집이도야 관등달고 뒷집이도야 관등다는데 우리임은 어델가고 관등놀이를 모르시노…….”

이 「달노래」는 특정한 기능을 가진 노래가 아니며 밭을 매거나 혼자서 오랜 시간 일을 할 때 무료함을 달래며 부른다.

이 밖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메뚜기를 추스리며 아이를 낳았다고 좋아하는 「항굴래비노래」와 「진보청송조리장사」 등 희극적 요소가 있는 서사민요가 전승되는 것은 이 지방이 민요의 고장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고장은 인물전설이 많은 지역이다. 특히, 신라시대의 인물전설이 많고, 근대의 인물로는 박문수 · 정만서 · 최제우 등의 전설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인물전설 외에는 「풍수설화」 · 「아기장수설화」와 자연물유래담들이 많이 전한다.

현곡면은 최제우가 태어난 곳이고 지금도 동학이 성한 고장이어서 최제우 및 그 아버지 근암(近菴) 최옥(崔鋈)의 이야기가 함께 전한다. 최옥은 여러 번 과거에 낙방하고 산림처사로 자처하며 살았는데 과부인 한씨부인을 만나 최제우를 낳았다.

최제우를 낳게 된 내력은 이렇다. 낙방만 거듭하던 최옥이 용담(龍潭)에서 공부를 하다가 깜박 졸았는데, 꿈에 달이 품속으로 사르르 들어왔다. 이 때 남편이 일찍 죽어 과부가 된 청주 한씨가 친정인 서면에 와 지내는데 초저녁 꿈에 우물가에 가니 달이 품속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전에는 얌전하기만 했던 사람이 천리라도 걸어야겠다는 듯이 온몸이 가시에 찔려 유혈이 낭자한 채 구미산을 넘어와 보니 불빛이 뻔한 곳이 있는데, 바로 최옥이 공부하는 용담정이었다.

최옥은 인기척에 문을 열고 한씨부인을 맞아 동침을 하여 최제우를 낳았는데, 이 때 최옥에게는 본부인이 있었다.

또 서면에서 조선 말기에 살았다는 정만서는 가난하고 지체가 낮은 미천한 백성으로 갖은 술책으로 지체 높고 돈 많은 사람을 괴롭히는 이 고장을 대표하는 시정잡배였다. 어린아이를 잃고 울고 있는 부인을 놓고 정만서가 다른 사람과 부인을 웃기는 내기를 하였다.

우는 부인 곁에 다가가 떠나지 않는 정만서를 보고 부인이 우는 사연을 말하였다. 정만서 또한 슬프다고 하며 다름 아니라 뱃속에서 회충을 낳는데 죽어버려서 슬프다고 하니 부인이 기가 막혀 웃었다. 물론 정만서는 내기에서 이겨 술 한턱을 잘 얻어먹었다.

또 강동면 호명리의 장군바위는 「아기장수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슬하에 자식이 없는 여인이 절에 다니며 불공을 드렸는데 꿈에 백발노인이 “내 아들을 보내줄 터이니 잘 기르라.”고 한 뒤에 보니, 바위 위에 큰 칼을 차고 서 있는 아이를 발견하였다.

아이는 여인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며 밥을 달라 청하며 마을의 왜놈들을 물리치겠다 하였다. 놀란 여인이 마을에 가서 이 사실을 알리니 사람들은 소년장군이 났으니 난리가 날 것이라며 불을 질러 죽여버리고 말았다. 이 때 소년장군이 섰던 바위에 발자국과 칼자국이 남아 있어 장군바위라 하게 되었다. 얼마 뒤에 과연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이 밖에 오봉산의 「주사암전설(朱砂庵傳說)」 · 「감은사연기설화」 · 「용궁바위전설」 등이 전한다.

산업 · 교통

2008년 현재 경주시의 총면적 중 임야가 67.9%, 농경지가 16.8%, 기타가 15.3%로 경지율은 낮은 반면 산림지역의 비중이 크다. 총경지면적은 223.12㎢로 그 중 논은 161.26㎢로 72.3%를 차지하고 밭은 61.86㎢로 27.7%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안강평야는 안강읍의 중앙을 관류하여 동으로 흐르는 토평천(土坪川)이 형산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형성된 평야로 안강읍의 동부와 동북부일대 및 강동면의 중앙과 서부일대에 펼쳐져 있으며, 수리시설이 잘 되어 있어 경상북도내에서 손꼽히는 곡창지대를 이룬다.

평야일대에서는 사과도 많이 재배된다. 주곡 위주의 농업이 행해지고 있으며, 다만 건천지역의 양송이 재배와 내남면과 산내면의 누에치기가 비교적 활발하다. 경주버섯은 건천읍을 중심으로 재배되고 있는데 전국생산량의 24.6%, 도내생산량의 98%를 차지하고 있다. 이 밖에 사과 · 배 · 복숭아 · 포도가 재배되는데, 사과는 안강 · 강동 · 천북면 등의 북부지역, 배는 남부지역에서 많이 생산된다. 그리고 돼지 · 한우 · 젖소 등이 주로 사육되고 있다. 경주는 한우, 버섯 전국 1위, 보리, 단감, 시설 토마토, 젖소 도 1위, 벼, 돼지 도 2위로 농 · 축산물 생산의 보고이다.

특산품은 교동에는 전통주인 교동법주, 황남동에서 처음 만들어진 조그마한 팥빵인 황남빵, 감포 앞바다에서 잡아올린 멸치를 짜낸 순수멸치젓이다. 그 외 경주배, 안강단감, 찰토마토, 남산에서 생산되는 자색의 경주옥돌, 동상의 소인이 있는 심장이 약한 환자에게 내복약으로 사용되는 4 · 5년생 약초인 오수유(吳茱萸), 강강제 · 완화제로 쓰이는 다년생 초본인 하수오(何首烏)가 있다.

임산물은 1,017,421㎏이 생산되었으며, 주로 버섯 · 산나물 · 밤 · 호두 · 대추 · 도토리 · 산딸기 등이 생산된다. 수산업은 시내의 유일한 어항인 감포(甘浦)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2007년 현재 2만 3,743M/T의 어획고를 보이고 있다.

산업구조는 농축수산업이 약 34%, 광공업이 15%, 서비스업 등이 51%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경주의 문화 · 관광도시의 특성상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높다. 산업 및 농공단지는 14개로 용강준공업지역, 8개의 지방산업단지, 5개의 농공단지(안강, 외동, 건천, 내남, 서면)에 모두 186개의 업체가 입주하여 있다. 자동차산업의 영향으로 총 1221개 기업체 중 자동차부품 생산업체가 33%를 차지하고 있으며, 포항종합제철의 영향으로 연관공업인 안강의 풍산금속공장 등 여러 공장이 입지하고 있으며, 경주의 특색 있는 것으로는 토석유리공업을 들 수 있다.

1976년 착공하여 1982년 준공된 월성원자력발전소는 국내 유일의 가압중수형 원자력발전소로 유명하다. 4기의 중수로 원전이 운영 중으로, 67만 8천㎾인 1호기는 83년에, 70만㎾급인 월성 2,3,4호기는 각각 97,98,99년에 준공되어 정상 운전 중에 있으며, 신월성 1,2호기가 건설 중에 있다. 발전소를 중심으로 양남면 · 문무대왕면 · 감포읍 일대는 1976년 산업기지 개발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상업은 신라의 수도였던 까닭에 일찍부터 발달하였다. 490년(소지왕 12) 3월에 경도시(京都市), 509년(지증왕 10)에 동시(東市)가 개설되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1830년대에는 사평 · 구어 · 읍내 · 부내 · 대창장 등의 5일장이 있었고, 1920년대 후반까지도 5일장에서 거래가 활발하였다. 특히 부내장은 대구 부내장과 더불어 영남의 2대시장으로 손꼽힐 만큼 규모가 컸다.

그러나 민족항일기 말 중앙선 · 대구선의 개통과 포항∼일본 서북부를 잇는 항로의 개설로 교통이 발달하고 인구가 증가하여 경주시의 상업은 급속히 발달하였다. 그러나 정기시장은 쇠퇴하였고,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유명무실화되었다.

반면, 시가의 번창과 더불어 공설 · 상설시장은 증가하여 1962년에는 불국사가축시장, 1963년 청과물도매시장, 1967년 경주가축시장이 개설되었다. 1970년대 이후 성도 · 성간 · 불국사 상가 등이 상설화되었고, 남흥 · 황오시장은 현대식 민영시장으로 변모하였다.

1982년에는 경주민영시장이 현대식 사설소매시장으로 개설되었으며, 농 · 수산도매시장도 1980년 이후 세 군데 개장되었다. 1985년경에는 불국사장(4 · 9일장) · 감포 · 하서 · 안강 · 입실 · 의곡 · 용산 · 건천 · 아화 · 어일 등 10개의 5일장이 공설로 열리고 있었다.

정기시장에서는 농수산물 · 공산품 · 생활필수품 · 산나물 · 약초 · 소 등이 주로 거래된다. 특히, 불국사장에서는 농산물과 소, 감포장과 하서장에서는 수산물, 입실 · 의곡 · 건천장에서는 농산물, 의곡장에서는 산채, 안강장에서는 소와 약초, 아화장에서는 소가 각각 많이 거래되고 있다. 2008년 현재 공설시장 11개소(감포, 안강, 건천, 외동, 양북, 양남, 산내, 서면, 성동, 구정, 불국사상가)와 사설시장 3개소가 있다.

교통은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며, 국도 7호의 포항∼울산간의 도로가 지나는 등 3호 · 4호 · 20호가 지나며, 이 외에도 지방도가 곳곳에 있어 편리하다. 철도의 중앙선과 동해남부선, 경부고속선도 지난다.

관광

신라 천 년의 고도로서 찬란한 신라문화의 보고인 경주는 자연박물관이자 세계적인 고적관광도시이다. 1968년 12월에 경주고적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본격적인 관광도시로 발달하였다. ‘보는 관광지’에서 ‘즐기는 관광지’로 유도하기 위해 1974년부터 계속하여 경주관광종합개발사업이 추진되어오고 있다. 유네스코에 의해 불국사, 석굴암(1995.12.9)과 남산, 월성, 대릉원, 황룡사, 산성 등 5개의 경주역사유적지구(2000.12.2), 양동마을(2010.7.31) 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3개 사적지구(토함산 · 오릉 · 무열왕릉 · 월성 · 남산 · 김유신장군묘 · 미추왕릉 · 황룡사지 · 문무대왕릉 · 금강산 · 명활산 · 괘릉 등)에 대한 문화재 복원 · 보수 · 정화작업이 추진되었으며, 보문지를 중심으로 대규모의 국제적인 위락시설을 갖춘 보문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2009년 현재 문화재는 국보 32점, 보물 82점, 사적 및 명승 2점, 사적 76점, 중요민속자료 16점, 중요무형문화재 2점, 천연기념물 3종, 기타 97점으로 총 313점이며, 전국의 약 4%, 경상북도의 약 22%를 차지한다.

이러한 문화재는 불국사와 토함산 · 금강 · 남산 · 서악 · 송화 등 5개의 국립공원지구에 집중 분포되어 있으며, 특히 기암고봉(奇巖高奉)의 남산(468m)은 30여 개의 깊은 하곡(河谷)에 백여 개의 절터와 기암괴석에 새겨진 불상 · 석탑 등 불교유적이 밀집되어 있다. 남산 서편기슭에는 석불입상 · 석불좌상 · 경애왕릉 · 삼릉 등과 포석계곡 · 선방계곡 · 삼릉계곡이 곁들여져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또한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나정과 신라의 종말을 알리는 경애왕의 비극이 서려 있는 포석정이 있다. 포석정은 진한 6촌의 시조를 모신 양산재 입구에서 1㎞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신라의 종말을 알리는 경애왕의 비극이 서려 있는 포석정, 삼국시대에 조성되어 햇살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미소가 일품인 배리삼존석불, 10곳의 절터와 14체의 석불상이 있는 삼릉골, 병풍바위에 살아 있는 듯 조각되어 있는 마애삼존육존불상 등이 볼 만하다.

유물의 수적인 면에서는 뒤지지만 규모나 예술적인 면에서는 단연 독보적인 동편기슭에는 남산에서 가장 큰 절로 비구니들의 수도처인 보리사와 8세기 말 신라불상의 걸작으로 보물로 지정된 석가여래좌상, 비스듬히 기울어진 바위 위에 조금은 거칠게 조각된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또한 불무사 대웅전 뒤쪽에 자리한 높이 9m, 둘레 30m의 여래상 · 보살상 · 비천상 · 나한상 및 탑과 사자 등 30여 종에 달하는 다양한 형상이 조각되어 있는 부처바위, ‘남산 아줌마부처’라는 별명을 가진 남산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부처인 감실석불좌상이 있다.

그리고 시내중심부 황남동의 4만여 평에 천마총을 비롯하여 20기의 능이 자리하고 있는 고분공원이 있다. 인왕동의 반월성 일대에는 첨성대 · 석빙고 · 월지와 신라 천 년의 문화 · 예술 · 역사 · 유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경주국립박물관이 있다.

구황동 에는 황룡사지와분황사가 있으며 서악동에는 무열왕릉과 진흥왕릉 · 문성왕릉 등의 고분군이 있다. 또한 토함산에는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어 한국적 불교사상과 인공미의 극치를 보여주며, 남동쪽 장항리탑정계곡에는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주요 명승고적으로는 나원리 오층석탑,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가장 완벽한 묘제(墓制)를 보여주는 괘릉을 비롯하여 부산성(富山城) · 경덕왕릉 · 흥덕왕릉 · 원원사지 · 관문성 · 기림사 등이 있다. 문무대왕면 봉길리 앞바다의 문무왕 해중릉(海中陵)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와 마주한 해변에는 봉길해수욕장이 있다.

안강에서 서쪽으로 7㎞되는 자옥산(紫玉山) 아래 절승지에는 1572년(선조 5) 건립된 이언적을 모신 옥산서원이 있고, 외동읍 방어리와 괘릉리에 걸쳐 영지가 있으며, 현곡면 가정리에는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가 출생하고 묻힌 곳인 용담정(龍潭亭)이 있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로는 양동이씨와 경주손씨의 동족마을인 양동민속마을이 있다. 크고 작은 150여 채의 조선시대 건축양식의 가옥과 2채의 사당 · 정자 15개소 · 학당 등이 계곡을 따라 여기 저기에 자리하여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이 가운데서는 보물 3점, 민속자료 12점, 지방유형문화재 4점이 포함되어 있다.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로는 회재이언적 선생의 선친인 이번이 살던 고택인 무첨당, 회재선생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할 때 중종이 그의 모친의 병환을 돌볼 수 있도록 배려해서 지은 집인 향단과 조선 중종 때의 청백리 우재손중돈이 분가하여 살았던 관가정이 있다. 많은 민속가옥이 남아 있는 이 마을은 안동하회마을과 더불어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또한 농촌전통테마마을인 안강옥산세심마을은 69호에 155명의 마을주민이 살고 있는 전통적인 한국의 농촌마을로 농촌진흥청에서 2002년도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선정, 자립적으로 농촌체험관광을 운영하고 있는 마을이다.

지역축제로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정부지정 문화관광 축제인 한국의 술과 떡잔치, 매년 4월 초 보문관광단지일원에서 펼쳐지는 경주벚꽃마라톤대회, 경주버섯축제, 문무대왕해맞이대축제와 새해맞이토함산기원대축제 등이 있다.

읍 · 면
  1. 감포읍(甘浦邑)

시의 동단에 위치한 읍. 면적 44.83㎢, 인구 6,013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감포리이다. 본래 경주부 동해면이었으나 1895년(고종 32) 장기군(長鬐郡)에 편입되어 내남면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경주군에 편입되어 양북면(현 문무대왕면)이 되었으며, 1937년 양북면(현 문무대왕면)의 오류 · 감포 등 9개 이가 분리되어 감포읍으로 승격되었다.

동대산계의 동부지역으로 바다 가까이까지 200m 내외의 산지가 해안에 급박하여 평야가 거의 없으며,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동해로 흘러드는 오류천(五柳川) · 전촌천(典村川) · 팔조천(八助川) 등은 기울기가 급하고 길이도 짧아 유역면적도 협소하다.

총경지면적은 8.39㎢로 18.7%, 임야면적은 32.34㎢로 72.1%, 기타는 9.2%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이 4.00㎢로 47.7%를, 논이 4.39㎢로 52.3%를 차지하며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슷한 비율로 행해진다. 농산물은 주로 파 · 양파 · 당근 · 감 · 천궁 등의 작물이 재배되며 돼지가 많이 사육되고 있다. 매년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며, 산업은 경지율이 낮아 주민의 약 3할 정도가 어업에 종사하며 가구수로는 4할을 차지한다.

수산업은 주로 시내 유일의 어항인 감포항에서 주로 행해지며, 2008년 현재 어선도 총 444척 중 동력 427척, 무동력 17척으로 10톤 미만의 소형어선이 대부분이다. 주어종은 꽁치 · 멸치 · 가오리 등이며, 약간의 전복과 미역의 양식이 행해진다. 특산물로는 멸치젓갈, 미역, 전복, 오징어, 꿀곶감 등이 있다.

교통은 울산∼신고산간의 국도가 전촌리에서 군산∼감포간의 국도와 만나 경주 도심지와 연결되며, 지방도가 북쪽의 구룡포(九龍浦)와 포항, 남쪽의 울산을 해안을 따라 연결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대본리에 이견대, 전동리에 삼락당 · 삼우정 · 삼인재, 오류리에 감포영성(甘浦營城)이 있고, 남쪽 끝의 대보리일대는 경주국립공원에 포함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감포(甘浦) · 오류(五柳) · 전동(典洞) · 전촌(典村) · 호동(虎洞) · 노동(魯洞) · 팔조(八助) · 나정(羅井) · 대본(坮本) 등 9개 리가 있다.

  1. 건천읍(乾川邑)

시의 중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92.40㎢, 인구 1만 663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건천리이다. 본래 경주군 서면 지역으로 1973년 서면에서 건천 · 천포 등 11개 리가 분리되어 건천읍으로 되었다.

동대산계의 동부지방과 단석산계의 서부지방 사이에 놓여 있으며, 경주에서 영일만쪽으로 빠지는 길이 54㎞의 형산강을 배경으로 넓은 건천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총경지면적은 19.06㎢로 20.6%, 임야면적은 61.72㎢로 66.8%, 기타는 12.5%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이 4.67㎢로 24.5%를, 논이 14.39㎢로 75.5%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농산물은 보리와 벼농사를 주로 하며, 지역특산물인 양송이버섯은 도내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고 있고, 당도 높은 포도재배집산지로 유명한 곳이며, 이 밖에 보리 · 무 · 배추 · 수박 · 고추 · 마늘 · 파 · 상추와 사과가 생산되고, 가축으로는 한우가 사육되고 있다.

교통은 경부고속도로와 중앙선, 국도가 평행으로 읍의 중앙을 관통하여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송선리에 부산성지, 방내리에 단석사지 · 척판대, 금척리에 고분군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분교 1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건천(乾川) · 천포(泉浦) · 송선(松仙) · 신평(薪坪) · 용명(龍明) · 대곡(大谷) · 화천(花川) · 모량(毛良) · 방내(芳內) · 금척(金尺) · 조전(棗田) 등 11개 리가 있다.

  1. 안강읍(安康邑)

시의 북서단에 위치한 읍. 면적 138.87㎢, 인구 2만 8866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안강리이다. 본래 안강현의 소재지로서 형산강 서쪽이 되므로 강서면이라 하여 갑산 · 산전 · 강교 등 19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강동면의 양동 등 일부 지역이 병합되었고, 1949년 안강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천북면 청령리가 안강읍에 편입되었다.

북부에 어래산 · 자옥산이 있고, 동부의 동대산계와 서부의 단석산계 사이를 흐르는 형산강이 읍내를 가로질러 흐르기 때문에 주변에는 넓은 농경지가 분포하는데, 특히 안강평야는 수리시설이 잘 되어 있어 경상북도내의 유수한 곡창지대를 이룬다.

이 평야를 중심으로 벼농사지대가 이루어진다. 총경지면적은 28.97㎢로 20.9%, 임야면적은 92.52㎢로 66.7%, 기타는 12.4%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이 8.71㎢로 30.1%를, 차지하고 논이 20.26㎢로 69.9%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안강읍은 경주시 제일의 쌀 주산지이며, 토마토, 단감, 포도 등의 특산물과 젖소, 한우, 돼지 등의 가축사육을 겸하고 있는 복합영농이 발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풍산 안강공장과 70여개의 중소기업이 산재해 있다. 또한 이 읍과 이웃한 산간지방 일대의 생활권이 안강쪽에 속하여 고추 · 마늘과 같은 밭작물이 모여들기 때문에 안강읍은 농간물 집산지로서의 상업기능도 대단히 높다.

교통은 동해남부선 철도가 경주와 포항을 연결하고 대구와 포항을 잇는 국도가 통과하고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강교리에 관수정, 하곡리에 수재정 · 성산서당, 양월리에 구강서원 · 익재영정, 대동리에 이의정 · 매호정, 산대리에 덕산서원 · 삼우정 · 서림정, 옥산리에는 독락당과 독락당 뒷편 정혜사지에 13층석탑이 있다. 또한 옥산서원과 서원내의 중국주엽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6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2개교가 있다. 안강(安康) · 양월(楊月) · 육통(六通) · 노당(老堂) · 산대(山垈) · 옥산(玉山) · 하곡(霞谷) · 강교(江橋) · 두류(斗流) · 근계(根溪) · 갑산(甲山) · 대동(大洞) · 검단(檢丹) · 사방(士方) · 청령(靑令) 등 15개 이가 있다.

  1. 외동읍(外東邑)

시의 남단에 위치한 읍. 면적 109.67㎢, 인구 2만 431명(2020년 12월 현재). 읍 소재지는 입실리이다. 본래 경주군 지역으로 경주읍내의 동쪽 바깥쪽이 되므로 외동면이라 하여 상신 · 하신 · 영지 등 3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동면의 일부가 병합되어 신계 · 활성 · 말방 등 1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75년 이동면 신계리의 일부가 경주시에 편입되었으며, 1980년 외동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동부에 삼태봉, 서부에 마석산이 있다. 총경지면적은 28.89㎢로 26.3%, 임야면적은 63.82㎢로 58.1%, 기타는 15.5%를 차지하고 있으며 경지 중 밭은 6.79㎢로 23.5%를, 논은 22.10㎢로 76.5%를 차지한다.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토양은 제3기의 화강암인 사질양토로 토지가 비옥하다.

주요 농산물은 배 · 배추 · 마늘 · 고추 등이 생산되어 남쪽의 울산공업단지에 농산물을 공급해주는 구실을 한다. 가축은 주로 한우 · 돼지가 사육되고 있다. 특히 대규모의 채소단지와 문산리 비육우단지는 이곳의 중요한 소득원이 되고 있으며, 공업도시 울산과 인접하여 대규모 공단이 입지하고 있다.

도로는 동해남부선과 부산∼온성간의 국도가 읍의 중앙을 남북으로 지나 경주와 울산을 연결하고 있다. 문화유적으로 모화리의 관문성은 지금도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선이 되고 있다. 이 밖에 모화리에 원원사터, 괘릉리에 괘릉, 방어리에 감화정 · 영지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6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입실(入室) · 구어(九於) · 모화(毛火) · 문산(汶山) · 석계(石溪) · 녹동(鹿洞) · 냉천(冷川) · 제내(堤內) · 북토(北吐) · 방어(方於) · 개곡(開谷) · 신계(薪溪) · 괘릉(掛陵) · 활성(活城) · 말방(末方) · 죽동(竹洞) · 연안(淵安)등 17개 리가 있다.

  1. 강동면(江東面)

시의 북동단에 위치한 면. 면적 81.48㎢, 인구 5,03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인동리이다. 본래 경주군 지역으로 형산강의 동쪽이 되므로 강동면이라 하여 모서 · 호명 · 인좌 등 2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모서 · 호명 등 11개 리로 개편되었다.

동쪽으로는 동대산맥이 남북으로 주행하여 면의 경계를 이루고, 서쪽으로는 형산강이 구조곡을 따라 북류하고 북쪽에서 남류하는 기계천(杞溪川)과 인동리에서 합류하여 유로를 동쪽으로 바꾸어 동해로 흘러든다. 서쪽은 안강평야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다.

총경지면적은 19.56㎢로 24.0%, 임야면적은 46.58㎢로 57.2%, 기타는 18.8%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은 6.17㎢로 31.5%를, 논은 13.39㎢로 68.5%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벼농사를 주로 하며 사과 · 배추 · 오이 · 고추 · 시금치 · 참외 · 복숭아 · 포도 · 감 · 천궁 등이 생산된다. 대표적인 농산물인 딸기, 부추 등의은 해외 수출도 하고 있다.

도로는 형산강구조곡을 따라 동해남부선이 포항과 경주를 연결하며, 인동리에서는 부산∼온성간의 국도와 영주∼포항간의 국도가 교차된다. 또 울산∼신고산간의 국도가 북부를 횡단하며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양동리에 관가정 · 두곡영당 · 설천정 · 수운정 · 심수정, 다산리에 귀래정 · 단계사 · 삼괴정, 왕신리에 수연정, 유금리에 동강서원 등이 있으며, 국당리에 옥련사(玉連寺)도 있다. 양동리는 여주이씨(驪州李氏) · 월성손씨(月城孫氏)의 동족마을인 양동민속마을이 유명하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분교 2개교)가 있다. 인동(仁洞) · 모서(毛西) · 호명(虎鳴) · 오금(吾琴) · 왕신(旺信) · 국당(菊堂) · 유금(有琴) · 양동(良洞) · 안계(安溪) · 다산(多山) · 단구(丹邱) 등 11개 리가 있다.

  1. 내남면(內南面)

시의 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122.03㎢, 인구 5,13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이조리이다. 본래 경주군 지역으로 경주 남쪽이 되므로 내남면이라 하여 상명 · 하명 · 백운 등 3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노곡 · 월산 등 16개 리를 관할하였고, 1975년 율동(栗洞)과 배리(拜里)가 다시 경주시로 편입되었다.

금오산맥과 주사산맥이 남북으로 주행하여 각각 동쪽과 서쪽의 경계를 이루고, 이들 산맥 사이를 형산강의 상류인 기린내가 북쪽으로 흐른다. 기린내와 그 지류를 따라 충적평야가 전개될 뿐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이다. 또한 형산강 상류지역의 청정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총경지면적은 19.63㎢로 16.1%, 임야면적은 90.73㎢로 74.4%, 기타는 9.5%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은 5.96㎢로 30.4%를, 논은 13.67㎢로 69.6%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하여 보리 · 녹두 등과 이외에도 오이 · 호박 · 수박 · 토마토 · 천궁 · 사과 · 배 · 고추 · 무 · 잎담배 등이 재배되며, 가축은 한우 · 닭 등도 사육된다. 박달리의 도진마을에서는 한지, 고사리 마을에서는 인삼 · 약초가 재배되며, 비지리에서는 닥나무가 생산된다. 토마토, 딸기 등 시설 채소단지 및 농공단지 조성되어 있다. 특산물로는 남산송이, 양봉, 사과, 배, 토마토, 딸기 등이 있다.

교통은 도로가 면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경부고속도로와 부산∼강릉간의 국도가 통과하여 경주시와 연결된다. 또한, 동서로 서면∼양남간의 군도가 지나고 있어 인근의 동부지역과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용장리에 용장사지 삼층석탑 · 석불좌상 · 천룡사지, 이조리에 봉암정 · 용산서원, 화곡리에 어연정 · 화계서당 등이 등이 있다. 이조리는 월성최씨(月城崔氏)의 동족마을이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용장(茸長) · 노곡(蘆谷) · 명계(椧溪) · 월산(月山) · 이조(伊助) · 부지(鳧池) · 덕천(德泉) · 안심(安心) · 상신(上辛) · 박달(朴達) · 비지(飛只) · 화곡(花谷) · 망성(望星) 등 13개 리가 있다.

  1. 산내면(山內面)

시의 남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142.55㎢, 인구 3,32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의곡리이다. 본래 경주군 지역으로 운문산의 안쪽이 되므로 산내면이라 하여 어두 · 원동 · 장사 등 1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남면(內南面) · 박달리(朴達里)의 일부와 울산군 두서면(斗西面) 소호동의 일부가 병합되어 9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단석산(斷石山, 827m) · 사룡산(社龍山, 685m) · 옹강산(翁江山, 832m) · 문복산(文福山, 1,014m) · 고헌산(高獻山, 1,033m) 등의 높은 산이 면을 둘러싸고 있으며, 동창천(東倉川)과 그 지류를 따라 좁은 곡저평야가 형성되어 있을 뿐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로 되어 있다.

총경지면적은 14.85㎢로 10.4%, 임야면적은 117.82㎢로 82.7%, 기타는 6.9%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은 6.93㎢로 46.7%를, 논은 7.92㎢로 53.3%를 차지하며 밭농사와 논농사의 비율이 비교적 비슷하다. 또한 경지율이 매우 낮은 전형적인 산지지역으로 약초의 재배 · 채취가 활발하다.

또한, 참깨 · 천궁 · 마늘 · 고추 · 배추가 많이 나며, 양봉 · 한우사육 등도 행해진다. 감산리의 장사마을에서는 고랭지채소가 재배되며, 내일리의 상목마을은 양잠으로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북동부의 일부지역은 경주국립공원 단석산지구에 포함된다.

지형상 교통은 극히 불편하나 시천∼경주간의 국도가 당고개를 넘어 건천읍과 통하고, 서쪽으로 청도읍과 연결되며 면의 남부에는 언양∼영천간의 지방도가 남북으로 나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분교 1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의곡(義谷) · 내일(乃日) · 대현(大賢) · 일부(日富) · 신원(新院) · 외칠(外七) · 내칠(內七) · 우라(牛羅) · 감산(甘山) 등 9개 리가 있다.

  1. 서면(西面)

시의 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52.13㎢, 인구 3,66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아화리이다. 본래 경주군 지역으로 경주읍내의 서쪽이 되므로 서면이라 하여 고천 · 고백 · 모량 등 3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모량 · 방내 등 17개 리로 개편되었다.

면의 중앙을 영천∼경주간구조곡이 동남으로 관통하고 남쪽과 북쪽은 산지를 이룬다. 남쪽에는 주사산이, 북쪽에는 인내산 · 관산(冠山, 394m) 등이 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낙동강 상류인 동창천이 면 중심을 관통하고 있으며, 산천어, 꺽지, 피라미, 빙어 등 민물고기가 많다.

총경지면적은 10.06㎢로 19.3%, 임야면적은 36.13㎢로 69.3%, 기타는 11.4%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은 2.80㎢로 27.8%를, 논은 7.26㎢로 72.2%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하여 호박 · 마늘 · 파 · 양파 · 상추 등의 채소류와 사과 · 포도 · 복숭아 등의 과실류가 재배되고, 가축은 돼지의 사육도 활발하다. 도리에서는 고랭지작물 · 특수밭작물의 재배와 양계 · 양돈 등으로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특산물로는 곤달비, 더덕 등이 있다.

도로는 면 중앙의 구조곡을 따라 경부고속도로와 중앙선, 군산∼감포간의 국도가 나란히 달려 대구 · 경주 등과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도계리에 계은정, 도리에 벽송정, 천촌리에 주사암이 있다. 천촌리의 샘촌마을에는 겨울에 얼지 않고 여름에 물이 아주 차가운 웅굴담, 여름철 땀띠를 없애준다는 월청샘, 들판 한가운데서 항상 일정한 양의 물이 솟아 농사에 이용되는 갈모샘 등 30여 개의 우물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아화(阿火) · 도계(道溪) · 천촌(泉村) · 서오(棲梧) · 심곡(深谷) · 도(道) · 사라(舍羅) · 운대(雲坮) 등 8개 리가 있다.

  1. 양남면(陽南面)

시의 남동단 동해안에 위치한 면. 면적 84.95㎢, 인구 6,582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하서리이다. 본래 경주부 지역으로 동해가에 있으므로 동해면이라 하였는데, 1895년 장기군에 편입되면서 양남면이라 하여 석촌 · 효동 · 나산 등 1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다시 경주부에 귀속되었다.

동대산맥의 동쪽사면을 이루는 산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삼태봉(三台峰, 629m)이 서쪽 경계의 최고봉이고, 북쪽 경계를 따라 조항산(鳥項山, 596m) · 우산(牛山, 334m)이 있다. 나아천(羅兒川) · 하서천(下西川) · 관성천(觀星川)의 세 줄기 작은 하천이 남동류하여 동해로 흘러들며, 그 하류에 소규모의 충적평야가 전개된다.

총경지면적은 11.93㎢로 14.0%, 임야면적은 64.55㎢로 75.9%, 기타는 10.1%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이 3.13㎢로 26.2%를, 논이 8.80㎢로 73.8%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하여 고구 · 감자 · 파 · 당근 · 감 등이 주로 생산된다. 신서리 범실마을에서는 포도, 다골마을에서는 감, 억수밑마을에서는 백도 등도 재배된다. 신대리의 건댓골에서는 한우사육으로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해안에서는 영세어업이 행해지며 미역채취, 바다뱀장어 · 복어 · 가자미 등이 많이 잡힌다. 특히, 수렴리의 구무바위 주민들은 미역 · 전복 · 멍게 등의 양식업으로 소득을 높이고 있다. 나아리에 원자력발전소와 수렴리에 코오롱그룹 사원휴양소가 설치되어 있다.

교통은 도로가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울산∼신고산간의 국도가 감포와 울산을 연결하며, 서면∼양남간의 군도와 석굴∼관성간의 군도가 면의 중앙부를 지나면서 이 면과 경주를 연결하고 있으나 불편하다.

수렴리 관성마을에서는 3년마다 풍어제를 지내며, 하서리 올골마을에는 마을어귀의 큰 당수나무 아래에서 정월 대보름날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풍속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분교 1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하서(下西) · 환서(環西) · 수렴(水念) · 신서(新西) · 서동(瑞洞) · 상계(上溪) · 신대(新垈) · 기구(基邱) · 석촌(石村) · 석읍(石邑) · 효동(孝洞) · 상라(上羅) · 나산(羅山) · 나아(羅兒) · 읍천(邑川) 등 15개 리가 있다.

  1. 문무대왕면(文武大王面)

시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20.06㎢, 인구 4,47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어일리이다. 본래 경주부 지역으로 동해가에 있으므로 동해면(東海面)이었는데, 1895년 장기군에 편입되어 내남면이라 하여 연동 · 오류 · 창사 등 3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동면의 일부가 병합되어 양북면(현 문무대왕면)으로 개칭되면서 경주군에 편입되었다. 1937년 9개 리가 감포읍으로 분리되었다.

추령(楸嶺) · 토함산을 잇는 동대산맥의 동쪽사면에 자리잡아 대부분의 지역이 산지이며, 중앙을 남동류하는 대종천(大鐘川)의 유역에만 소규모의 평야가 분포한다.

총경지면적은 14.88㎢로 12.4%, 임야면적은 95.15㎢로 79.3%, 기타는 8.3%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이 4.93㎢로 33.1%를, 논이 9.95㎢로 66.9%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미곡위주의 논농사를 주로 하고 있으나 최근 양북토마토로 잘 알려진 토마토와 부추 등 채소재배와 한우사육을 중심으로 한 축산업이 발달하였고, 넓은 산지를 이용한 산나물채취 및 엄나무 등 소득작목으로 소득을 높여가고 있으며 해안지역은 회식당과 미역 등 해산물 판매와 양식어업을 주로 하고 있다.

봉길리 일원에는 한국수력원자력(주) 월성원자력 본부가 위치해 있으며, 봉길리 신월성 1,2호기 인접부지에는 64만평 규모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방폐장)이 건설될 예정이다.

교통은 도로가 면의 북부를 동서로 군산∼감포간의 국도가 통과하며, 남북으로 나 있는 양북∼오천간의 지방도는 해안에까지 이르러 울산∼신고산간의 국도와 만난다.

문화유적은 용당리에 감은사지 · 감은사지삼층석탑, 장항리에 장항사지오층석탑, 봉길리에 문무왕해중릉, 범곡리에 석굴암 등이 있으며, 장항리에는 장항사터와 토함산 기슭의 울창한 삼림속에 들어선 토함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그리고 호암리에는 지림사도 있다. 봉길해수욕장 일대는 경주국립공원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분교 1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어일(魚日) · 와읍(臥邑) · 용동(龍洞) · 권이(權伊) · 호암(虎巖) · 안동(安洞) · 장항(獐項) · 범곡(凡谷) · 입천(卄川) · 송전(松田) · 죽전(竹田) · 두산(斗山) · 용당(龍堂) · 구길(九吉) · 봉길(奉吉) 등 15개 리가 있다.

  1. 천북면(川北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58.21㎢, 인구 5,24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동산리이다. 본래 경주군 지역으로 동천의 북쪽이 되므로 천북면이라 하여 지북 · 고성 · 용강 등 22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부내면의 북정리와 내동면의 사리 일부, 강서면의 검단리 일부가 병합되어, 황성 · 용강 등 15개 리로 개편되었다. 1955년 경주가 시로 승격되면서 3개 리가 경주시로 편입되었고 1975년 다시 2개 리가 경주시로 편입되었다.

동쪽으로는 태백산맥의 지맥이 동대산맥, 서쪽으로는 형산강이 경계를 이루며, 그 양안에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중앙부에는 소항천(小項川)의 지류 및 왕신천(旺信川)의 상류가 넓은 산간분지를 이루고 있다.

총경지면적은 13.99㎢로 24.1%, 임야면적은 33.66㎢로 57.9%, 기타는 18.0%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이 4.41㎢로 31.5%를, 논이 9.58㎢로 68.5%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하여 배추 · 오이 · 호박 · 참외 · 수박 · 마늘 · 파 · 당근 · 미나리 등의 소채류와 참깨 · 시호 등이 생산되며, 주로 한우 · 닭이 사육되고 있다.

지역 특산물은 오야리 청정미나리, 모아2리 수출딸기, 신당리 부추 단지 등이 유명하며, 화산불고기 단지와 화산지방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도로는 형산강구조곡을 따라 부산∼온성간의 국도가 남북으로 통과하여 포항 · 경주와 연결되며, 주민의 일상활동은 경주의 생활권내에서 이루어진다. 문화유적은 오야리에 삼층석탑, 신당리에 신당사(神堂寺)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분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동산(東山) · 덕산(德山) · 신당(神堂) · 모아(毛兒) · 오야(吾也) · 갈곡(葛谷) · 물천(勿川) · 성지(聲池) · 화산(花山) 등 9개 리가 있다.

  1. 현곡면(見谷面)

시의 서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55.78㎢, 인구 2만 1,897명(2021년 1월 현재). 면 소재지는 금장리이다. 본래 경주군 지역으로 현곡면이라 하여 나원 · 오류 · 협평 등 1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내면의 일부, 천북면 청평리 · 신당리의 일부가 병합되어 나원 · 오류 등 10개 리로 개편되었다.

면에는 안태봉(安胎峰, 338m) · 금곡산(金谷山) · 어림산(御臨山, 510m) · 구미산 · 옥녀봉을 잇는 산릉이 있으며, 소현천(小見川)이 면의 중앙을 남동으로 흐르면서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면계에서 형산강과 합류한다.

총경지면적은 11.68㎢로 21.0%, 임야면적은 37.45㎢로 67.2%, 기타는 11.9%를 차지하고 있다. 경지 중 밭이 3.45㎢로 29.5%를, 논이 8.23㎢로 70.5%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하여 배 · 복숭아 등의 과수재배와 무 · 토마토 등의 소채재배도 활발하다. 금장리의 옹기골은 옹기생산지로 유명하다. 특산물로는 현곡배와 나원토마토 등이 있다.

교통은 도로의 경주∼청하간의 지방도와 동해남부선이 동쪽의 경계를 지나며, 소현천 계곡에는 경주∼영천간의 지방도가 시의 중심지와 연결되고 있다. 문화유적은 나원리에 오층석탑 · 신라진덕왕릉 등이 있으며, 오류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등나무가 있다. 남쪽의 옥녀봉일대는 경주국립공원지구에 속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금장(金丈) · 상구(上邱) · 하구(下邱) · 가정(柯亭) · 남사(南莎) · 내태(來台) · 무과(武科) · 소현(小見) · 오류(五柳) · 나원(羅原) 등 10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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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건설부, 1979)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79)
『경북향토지』(경상북도교육위원회, 1972)
경주시(www.gyeongju.go.kr)
집필자
박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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