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이패 (딱딱이)

목차
연극
개념
조선시대 서울 중심의 경기 일대에서 산대놀이를 놀던 연희집단. 본산대.
이칭
이칭
본산대(本山臺)
목차
정의
조선시대 서울 중심의 경기 일대에서 산대놀이를 놀던 연희집단. 본산대.
내용

산대놀이 연희자들은 궁중천역(宮中賤役)에 종사하던 편놈(伻人)들로서 서울 성문 밖에 살았다.

그러나 인조 때 이후 공의(公儀)로서의 산대연희가 폐지되자 이들은 분산하여 제각기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산대놀이 단체(契)를 모으고 각각 경향 각지를 순연(巡演)한 결과 애오개(阿峴)산대·녹번(碌磻)산대·사직(社稷)골 딱딱이패 등이 생겼다고 한다.

이들을 본산대(本山臺)라고 부르지만 오늘날 그 본산대는 전해 오지 않고, 사직골 딱딱이패의 본산대를 본뜬 양주별산대(楊州別山臺)놀이만이 전하여 온다. 사직골 딱딱이패는 백정·상두꾼·건달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구전에 의하면 양주골에서는 약 200년 전부터 해마다 주로 4월초파일과 5월 단오에 한양의 사직골 딱딱이패를 초청하여 산대놀이를 놀게 하였는데, 그들은 지방순례 등으로 공연약속을 어기는 일이 한 두번이 아니어서 불편을 느낀 나머지 양주골에서 신명이 과한 자들이 모여 딱딱이패를 본떠 가면과 의상 등을 제작하고 공연했는데, 성공을 거두자 그 이후부터 발전시켜 내려온 것이 양주별산대놀이라고 일러온다.

딱딱이패는 본산대가 전하지 않는 오늘날, 양주별산대놀이라는 분파를 형성시켰다는 점에서 연극사적 의의가 있다. →양주별산대놀이

참고문헌

『한국가면극(韓國假面劇)』(이두현, 문화재관리국, 1969)
집필자
이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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