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의 노예 (흙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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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노예 / 이무영
흙의 노예 / 이무영
현대문학
작품
이무영(李無影)이 지은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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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이무영(李無影)이 지은 단편소설.
내용

이무영(李無影)이 지은 단편소설. 1940년 4월 ≪인문평론 人文評論≫(7호)에 발표되었다. <제1과 제1장>의 속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며, 그 구성이 <제1과 제1장>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져 있으며, 배경과 인물이 동일하다. 내용은 농촌의 가난 문제를 보다 심각하고 치밀하게 파헤치고 있으며, 아울러 농민의 땅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한가를 매우 감동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낙향한 수택은 자신의 농촌 설계가 무정견하고 로맨틱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낙향하여 처음 몇 달간은 농사를 지으며 소설도 쓴다는 일종의 허영과 자만으로 유쾌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피땀 흘려가며 농사를 짓고 나서 추수를 해보니 자기 몫으로 남는 것은 벼 넉 섬 뿐이었다. 이것으로 다섯 식구가 반년을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 앞에 그만 낙담하고 만다.

도저히 생활 설계가 되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자기 집이 완전히 몰락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더욱 큰 충격을 받는다. 아버지 김 영감은 고아로 자수성가한 근검의 화신이라 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30여 마지기의 논을 10년 사이에 다 날리고 맨주먹의 소작농이 되어 있었다. 김 영감은 그것이 신문명의 유입 때문이라고 말한다.

신문명은 사람의 기호를 바꾸어놓고 필요의 증대를 유도하였으며, 농민들은 과도한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고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기계문명이 농촌을 망쳤다는 것이 김 영감의 결론이었다. 일제의 식민지 시장정책에 의한 우리의 농촌 착취를 우회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농민들의 가난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수택은 야학당(자기도 과거에 가르쳤던)에 들렀다가 선생으로부터 하루 죽 한끼도 못 먹는 아이들이 파다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울해진다. 김 영감의 땅에 대한 집착은 광적이었다. 그는 지금은 남의 땅이 된 지난날의 자기 땅을 찾아가 물끄러미 바라보는가 하면, 휴지가 되어버린 땅문서를 뒤적이기도 한다.

수택이 자신의 원고료와 퇴직금, 그리고 일부 세간을 판 돈을 합해서 그 땅을 도로 사겠다고 하니 김 영감은 뛸 듯이 기뻐한다. 하지만 이미 병든 몸이다. 자신의 약값 때문에 땅값이 축날 것을 염려한 김 영감은 “찾어-땅-.” 한마디를 남기고 양잿물을 마시고 자결한다. 김 영감에게 있어서 땅은 그의 전부였고, 그는 철저한 흙의 노예였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농민들의 일반적 속성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식민지 치하에서의 농민의 가난과 가난한 농민의 흙에 대한 집념을 리얼하게 묘사함으로써 당시 농민들의 삶과 의식의 한 단면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신문학사조사(新文學思潮史)』(백철, 신구문화사, 1981)
「일제시대한국농민소설연구」(임영환, 서울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76)
「한국농민소설연구」(신춘호, 고려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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