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일보 ()

강원일보(1947. 10. 15, 지령 541호)
강원일보(1947. 10. 15, 지령 541호)
언론·방송
문헌
강원일보사에서 민족정화운동과 향토문화창달을 위하여 1945년에 창간한 신문. 일간신문.
이칭
이칭
팽오통신(彭吳通信)
정의
강원일보사에서 민족정화운동과 향토문화창달을 위하여 1945년에 창간한 신문. 일간신문.
발간 경위 및 변천

1945년 10월 24일 8절 양면 등사판의 『팽오통신(彭吳通信)』으로 출발하였다. 같은 해 11월 27일 제27호부터 『강원일보』로 제호를 변경하고 타블로이드판 5면으로 재출발하였다. 발행인 겸 편집인은 남궁태(南宮珆)였으며, 편집국장도 겸임하였다. 편집방향을 민족정화운동과 향토문화창달 및 민주독립국가건설에 역점을 두었다.

처음에는 동인제(同人制)로 운영되다가 1947년 12월 주식회사로 발족하면서 김우종(金宇鍾)이 초대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6 · 25전쟁으로 한때 휴간되었다가 1952년 5월 12일원주시 개운동에서 타블로이드판으로 복간호를 발행하였다. 1954년 3월 10일 춘천시 중앙로의 옛 사옥으로 복귀하여 같은 해 8월 15일부터는 타블로이드 배판으로 지면을 쇄신하였다.

1957년부터 지방지로서는 제일 먼저 지방지 특성화를 꾀함으로써 편집방향을 100% 지역성에 두었으며, 1958년부터 지방연감의 효시인 『강원연감(江原年鑑)』을 발행하였다. 1962년 10월 4면으로 증면, 1969년 4월 일요일 8면 증면, 같은 해 9월 수요일 8면 증면, 1970년 3월 주 36면 발행을 단행하였고, 1975년 5월부터 『어린이 강원』을 주 1회 발행하였다.

1993년 2월부터 매일 20면으로 증면 발행되었고, 1994년 3월 조간으로 전환되었다. 1996년 7월 4일 전자신문 『유니텔 강원일보』서비스를 개시하였으며, 1997년 5월『생활메아리』를 창간하였다.

한편, 주조기 · 윤전기 · 오프셋인쇄기 등 시설의 현대화를 통해 향토문화와 지역개발에 선도적 구실을 하였다. 특히 향토학과 지방사(地方史) 발굴의 일환으로 1973년 3월부터 1977년 5월에 이르기까지 『강원문화총서(江原文化叢書)』 4집을 발행, 전 15권의 향토사를 정리, 발행하였다. 또한 2008년 2월 4일 신문발전위원회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우선지원대상사업자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자매지로는 월간 『태백문화(太白文化)』(1987년 7월 창간)와 주간 『어린이 강원』(1975년 5월 창간, 2004년 4월 16일『어린이 강원일보』로 개제) 등이 있다. 주요 행사로는 신춘문예, 3 · 1절 경축 강원도단축마라톤, 춘천 전국인라인 마라톤대회, 모자사생대회(母子寫生大會), 강원보훈대상, 강원 농어업인 대상, DMZ 평화상, 태백곰기 중학교 축구대회, 강원일보사장기 초등학교 축구대회, 태백곰기 전국컬링대회, 미스강원 선발대회 등이 있다.

현황

사옥은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중앙로1가 23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장은 박진오가 맡고 있다.

참고문헌

『2009 한국신문방송연감』(한국언론재단, 2009)
『1998 한국신문방송연감』(한국언론연구원, 1998)
『강원일보사십년사(江原日報四十年史)』(강원일보사, 1985)
『한국신문백년지(韓國新聞百年誌)』(윤임술 편, 한국언론연구원,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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