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교련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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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 후기 용호영(龍虎營: 금군청)에 소속된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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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 용호영(龍虎營: 금군청)에 소속된 관직.
개설

교련관 14인 중 금군(禁軍) 출신의 교련관 2인을 말한다.

내용

1754년(영조 30) 금군청의 당상군관 10인을 감원하고 그대신 교련관 10인을 두게 되었는데, 이듬해 병조판서 홍봉한(洪鳳漢)의 건의로 금군 가운데서 병서(兵書)를 아는 자 2인을 교련관에 임명하고 이를 겸교련관이라 하였다. 이는 겸습독사(兼習讀事)가 겸사복을 맡는 관례에 의한 것이었다.

겸교련관의 선발시험에는 『병학지남(兵學指南)』 8편을 배강(背講: 책을 보지 않고 돌아앉아서 보는 구두시험)하여 성적이 우수한 자를 뽑았다. 교련관은 금군의 교육훈련업무에 종사하였고 복무기간 20개월이 지나면 관례에 따라 6품(참상관)의 위계로 승진되었다. →교련관

참고문헌

『만기요람(萬機要覽)』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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