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명칭은 병마방어사 또는 수군방어사였으나, 전원을 지방수령으로서 겸임하도록 하였으므로 겸방어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고종 초까지는 병마방어사 6인, 수군방어사 2인이었으나 그뒤에 각기 8인, 5인으로 증가되었다.
전자는 경기도의 수원·광주·파주·장단, 강원도의 철원, 함경도의 길주, 평안도의 창성(昌城)·자산(慈山)에 두었고 후자는 인천광역시의 영종도(永宗島), 평안도의 선천(宣川)·삼화(三和), 경상도의 창원, 충청도의 태안에 두었다.
방어사는 수령이 겸하게 하였으나 그 품계가 병마절도사나 수군통제사와 같은 종2품의 고관이었으므로, 사실상 방어사가 해당지역의 수령을 겸하는 것이었다. 겸방어사 제도는 별도의 군비를 갖춘 방어체제가 아니고 기존의 지방행정단위를 군사적으로 강화하고 비중있는 무관을 파견함으로써, 유사시에 대비하고자 한 의도에서 마련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