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內將)이라고도 하였다. 종2품의 무관직으로 정원은 3인이었으나, 모두 다른 부서의 관원들로 겸직하게 하였고 문관들이 겸하는 경우도 많았다.
겸사복이 편성된 것은 1409년(태종 9)이었으나, 겸사복장은 1461년(세조 7)에 와서 처음으로 4인이 임명되었는데, 여기에는 홍달손(洪達孫)·구치관(具致寬)·조석문(曺錫文)·김순(金淳) 등 당시 핵심적인 세조공신들이 망라되었다.
1464년에는 겸사복의 조직이 정비되어 종2품 아문으로 직제화되고 특수병종인 겸사복 50인이 배속되었는데, 이때 겸사복장의 정원도 3인으로 정해졌다. 이들의 임무는 궁궐의 경비와 궐내순찰, 국왕 행차시의 경호 등이었고, 정예군이 되기 위하여 끊임없이 훈련에 종사하였다.
겸사복장은 겸사복을 4번으로 나누어 1인씩 번갈아 인솔하여 궁궐의 경비에 입직하였다. 또, 이들은 왕의 행차시에 사복시(司僕寺)의 말을 타고 호위하였고, 상참(常參 : 매일 가지는 약식 조회)에도 여러 위장(衛將)들과 함께 참가하였다.
겸사복은 효종 때 내금위(內禁衛)·우림위(羽林衛)와 합쳐 내삼청(內三廳) 혹은 금군청(禁軍廳)이라 하였고, 1755년(영조 31)용호영(龍虎營)으로 개칭되었으나 겸사복장의 직명은 조선 말기까지 존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