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영장 ()

목차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 후기 각 도에 설치된 진영장(鎭營將) 중에서 지방의 수령이 겸직하도록 한 정3품관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 후기 각 도에 설치된 진영장(鎭營將) 중에서 지방의 수령이 겸직하도록 한 정3품관직.
내용

영장은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후에 지방군대를 속오법 체제로 재정비하고, 효과적으로 통솔하기 위해 각 도에 전·후·좌·우·중영을 설치하고 파견한 정3품 무관직이었다.

그러나 지방수령들과의 마찰이 심했고, 또 평안도와 황해도의 수령들은 대개 무관으로 임명하였으므로 전임영장(專任營將)을 파견하는 대신 수령 중에서 군사에 조예가 있는 자로 겸임하게 하였다. 이것을 겸영장이라 하였는데, 조선 말기에는 46인의 전체 영장 중에서 33인이 겸영장이었다.

현종 이후 그들에게는 모두 도적을 잡는 토포사(討捕使)를 겸임시켰다. 강화도의 진무영에는 별도의 진영장 5인이 배속되었는데, 인근 고을의 수령들과 본영의 중군이 겸직하였다. 또, 총융청의 진영장 3인과 수어청의 진영장 3인도 각기 해당지역의 수령이나 본영의 중군으로 겸임시켰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효종실록(孝宗實錄)』
『대전회통(大典會通)』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조선후기의 영장에 대하여」(차문섭, 『김성식박사화갑기념논총』, 1968)
집필자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