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은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후에 지방군대를 속오법 체제로 재정비하고, 효과적으로 통솔하기 위해 각 도에 전·후·좌·우·중영을 설치하고 파견한 정3품 무관직이었다.
그러나 지방수령들과의 마찰이 심했고, 또 평안도와 황해도의 수령들은 대개 무관으로 임명하였으므로 전임영장(專任營將)을 파견하는 대신 수령 중에서 군사에 조예가 있는 자로 겸임하게 하였다. 이것을 겸영장이라 하였는데, 조선 말기에는 46인의 전체 영장 중에서 33인이 겸영장이었다.
현종 이후 그들에게는 모두 도적을 잡는 토포사(討捕使)를 겸임시켰다. 강화도의 진무영에는 별도의 진영장 5인이 배속되었는데, 인근 고을의 수령들과 본영의 중군이 겸직하였다. 또, 총융청의 진영장 3인과 수어청의 진영장 3인도 각기 해당지역의 수령이나 본영의 중군으로 겸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