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와 역(驛)·원(院)의 관리와 감독을 위하여 설치한 종6품직인 찰방의 폐해를 규찰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1551년(명종 6)에 처음 설치되었다. 중종 때 김안로(金安老) 등이 서리출신의 자리였던 각 도의 종9품 역승(驛丞)을 찰방으로 승격시켜 문음출신의 자제들을 임명하면서 각종 부정부패가 심해지자, 불법적인 사례를 적발해 중앙에 보고하는 역할을 맡긴 것이다. 주로 문과급제자가 분관되는 성균관·교서관·승문원의 참하관을 파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파견 지역은 『대전통편』에 의하면 경기도의 영서(迎曙)·양재(良才), 충청도의 성환(成歡), 경상도의 유곡(幽谷)·황산(黃山), 전라도의 삼례(參禮), 황해도의 금교(金郊), 강원도의 은계(銀溪), 함경도의 고산(高山), 평안도의 대동(大同)·어천(魚川) 등이었다.
『대전회통』 편찬 때에는 경기도의 경안(慶安)에 파견되고 대신 양재는 폐지되었다. 이는 왕의 측근 문신들이 겸찰방이라는 직함을 띠고 임시로 파견되어 감독 및 규찰의 임무를 수행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찰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