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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에, 경향신문사에서 진실 보도를 사시로 하여 창간한 일간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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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46년에, 경향신문사에서 진실 보도를 사시로 하여 창간한 일간 신문.
발간 경위 및 변천

1946년 10월 6일 경성천주교재단의 신문으로 창간되었는데, 제호는 1906년 10월 19일 천주교에서 발간한 같은 이름의 신문을 재건한다는 의도에서 사용한 것이다. 창간사에서 “거짓말 아니하는 것만으로도 혼란기의 고덕(高德)이 되려니와 정말 하기를 항산천업(恒産天業)으로 할 것”이라고 하였듯이, 진실보도를 사시(社是)로 하여 출발한 이 신문은 창간 1년 만에 발행부수가 62,000부로 늘었다.

1950년 6·25전쟁으로 임시휴간에 들어갔으나, 북진과 함께 그 해 11월평양에서 ‘전선판(前線版)’·‘서북판(西北版)’으로 발행하여 우리나라 종군기자 1호인 박성환(朴聖煥)을 배출하였다. 1951년 1·4후퇴 당시 대구에서 1월 10일자로 ‘이동전시판(移動戰時版)’을 만들었으며, 그 해 4월부산에서 타블로이드 2면으로 복간되었다.

1952년 5월 전시계엄령 하에서 발췌개헌안에 대한 비판적인 보도로 폭력단 ‘땃벌떼’의 습격을 받아 임시 본사의 일부가 파괴되기도 하였다. 1953년 8월서울 본사로 돌아온 뒤, 1954년 11월 우리나라 최초로 축쇄판을 발행하였다. 1957년 7월 2일자부터 조간 2면, 석간 4면의 6면제를 단행한 데 이어, 1958년 12월 17일 조·석간 8면을 발행하였다.

창간 때부터 반공적이고 보수적 성격을 띠어온 이 신문은 1959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야당성과 반독재노선을 분명하게 하였다. 특히 천주교도인 부통령 장면(張勉)의 피습사건 후 논조가 더욱 강경하게 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독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어서 당시 발행부수 20만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1959년 2월 4일자 조간의 ‘여적(餘滴)’란에 “현 한국정세는 공명선거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무력에 의한 혁명이 일어날 전조를 보이고 있다.”는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내용을 게재하여, 이른바 ‘여적사건’이라는 필화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은 국회의원인 필자 주요한(朱耀翰)과 사장 한창우(韓昌愚)를 2월 28일 정식으로 기소하고, 4월 30일 군정법령(軍政法令) 제88호를 적용하여 신문을 강제 폐간시켰다.

이와 같은 폐간 조처는 당시 언론계 및 문인·종교인 등 사회 각계로부터 많은 반발을 불러 일으켰으며, 신문사는 폐간 조처에 불복하여 법정투쟁을 벌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4·19혁명이 일어났고, 대법원 결정에 따라 1960년 4월 27일자(제4327호) 조간부터 복간되었다.

1964년 2월 1일자 1면 「3분(三粉) 의혹 점차 확대」라는 머리기사가 도화선이 되어 이른바 ‘3분 폭리’라는 사회문제로 확대되었으며, 1964년 5월 13일 「난국타개는 이것부터」라는 제하의 기사로 필화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 해 6·3비상계엄령 하에서 사장 이준구(李俊九) 등이 구속되었다.

1965년 3월 10일에는 9일자 「한양대학교에 뒷문입학」 기사에 항의하는 한양대학교 일부 교수와 학생 200여 명에게 편집실이 8시간 동안 점거당하기도 하였다. 1965년 8월에는 이준구 등이 「반공법」 등 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

1981년 1월 5일 신문지면을 종전 8면에서 12면으로 증면하고, 편집국에 특집기획부를 신설하여 그 해 11월 20일부터 격주 컬러 기획기사 「민족사의 맥(脈)」을 실었으며, 1982년 2월 8일부터 ‘인물광장(人物廣場)’을 실어 신문을 다채롭게 꾸몄다. 1984년 4월 2일 신문단수를 17단에서 15단으로 조정하였으며, 1985년 6월 4일부터 전 지면을 오프셋인쇄로 발행하였다.

1987년 9월 주 80면, 1989년 10월 27일 주 100면으로 증면하였고, 이후에도 계속 증면을 단행하여 2010년 현재 주 228면을 발행하고 있다. 1991년 4월 1일부터는 석간에서 조간으로 전환하였고, 같은 해 10월 20일 지방에서도 동시에 인쇄가 가능하게 되었다.

1992년 12월 30일 지면제작이 전면 전산제작되었으며, 1994년 6월 1일 지면의 3분의 1을 가로쓰기로 전환하였다. 1995년 5월 16일 광고 없는 1면 발행을 단행하였고, 1996년 9월 11일 편집국을 ‘소그룹 다팀제’로 개편하였다. 1997년 4월 7일부터는 제호를 한글로 바꾸고 전면 가로쓰기를 단행하였다.

참고문헌

『2009 한국신문방송연감』(한국언론재단, 2009)
『1998 한국신문방송연감』(한국언론연구원, 1998)
『경향신문사십년사』(경향신문사, 1986)
『한국현대언론사론』(정진석, 전예원, 1985)
『한국신문협회20년』(한국신문협회, 1982)
『한국신문사연구』(이해창, 성문각,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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